[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풍수과학 다룬 ‘명당’ 쓴 이문호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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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 이루고 후손 번창한 집안들… 증조부 묏자리 공통점 있더라”

‘명당’의 저자 이문호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센서 개발 전문가인 그는 지질탐사 기술을 활용해 명당의 조건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명당’의 저자 이문호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센서 개발 전문가인 그는 지질탐사 기술을 활용해 명당의 조건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부와 권력의 운명을 풍수과학으로 풀어쓴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명당’(엔자임하우스)의 저자 이문호 영남대 교수(60·신소재공학부)의 이력을 보고 있노라면 책의 내용과 묘한 부조화를 발견하게 된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박사를 받고 영남대 공과대에 최연소 교수(27세)로 임용돼 적외선 카메라나 가스 검침 장비 등에 쓰이는 각종 센서를 개발해온 과학자가,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풍수와 명당에 관한 책을 썼기 때문이다.

“1998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묏자리를 봐 주러 온 풍수가가 수맥을 찾는다며 ‘L로드’(L자 모양으로 굽은 금속 막대)를 사용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 기구의 원리는 뭐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나?’ 하는 생각을 했죠.”

호기심 수준이던 풍수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인 연구대상으로 바뀌게 된 데에는 영남대에 풍수가 출신 대학원생 2명이 입학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학원생들이 전국 수천 기의 묘소를 찾아 입지를 분석하고 족보를 찾아 묘 주인의 후손 수를 조사했는데, 신기하게도 경사가 심한 산비탈이나 산꼭대기에 쓴 묘소 주인의 후손 수가 3, 4대 사이에 급감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겁니다. 그 결과를 보고는 ‘내가 주도해 연구해 봐야겠다’ 했지요.”

이 교수는 약 8개월에 걸쳐 전국에 있는 후손이 번창한 집안, 높은 벼슬을 지낸 조상을 둔 가문부터 국내 재벌 기업의 창업자와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조상 묘소를 찾아 다니며 지질조사 장비를 이용해 땅속 상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후손이 번창했거나 큰 부를 일군 인물의 조상, 특히 증조부모 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관을 묻는 지점 아래가 구덩이 형태로 움푹 꺼진 암석층이 있고, 그 구덩이는 풍화가 잘된 고운 흙층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풍수가들이 명당으로 보는 ‘혈(穴)’의 지질학적 조건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묏자리의 영향이 왜 하필 증손자대에 나타나는지, 조상의 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후손의 복에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남의 묘소 주변을 조사하고 다니다 보니 이를 오해한 후손들과 실랑이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양평에 있는 택당 이식 선생의 묘 주변을 조사하는데 그 집안 종손께서 ‘남의 묘에서 뭐하는 거냐’고 하시더군요. ‘이름난 명당의 공통점을 찾아 소개하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마음이 풀리셨는지 저희 연구팀이 찾고 있던 택당 선생의 증조부 묘소의 위치까지 알려 주셨지요.”

명당의 조건을 알아낼 수 있는 저자라면 자신의 묏자리로 점찍어 둔 곳은 없을까?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묘는 조사를 통해 일부 위치를 옮기기도 했지요. 하지만 제 묏자리로 봐둔 곳은 없습니다. 저는 한 인물이 명당에 들 가능성은 생전에 그 사람이 타인에게 베푼 마음의 크기에 비례해 커진다고 믿어요. 평소 베푸는 삶을 살지 못한 저를 위한 명당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네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명당#이문호#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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