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회 양극화와 공존하는 21세기 ‘만능 곳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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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사회학/전상인 지음/216쪽·1만6000원·민음사

혹시 최근에 집 주변을 둘러본 적 있는가.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서점이나 철물상을 찾기 힘들다. 어디 그뿐인가. 만화방 오디오가게 양품점…. 10여 년 전이면 어디에나 있던 점포들이 깡그리 씨가 말랐다. 그리고 그곳은 편의점(혹은 커피체인점)이 꿰차고 앉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편의점당 인구는 2075명. 발원한 미국이나 번영한 일본을 제치고 인구 대비 편의점 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1989년 당시 미국계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서울에 처음 들어온 걸 고려하면 성장 속도도 세계 최고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보기에 한국의 ‘편의점 천하’는 다양한 함의를 갖는다. 물론 밤새 영업하고 접근성이 높아 ‘편리한 가게’가 느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과도한 현상에는 분명 시대적 함의를 읽을 수 있는 흐름이 존재한다.

실제로 편의점의 사회적 이미지는 20여 년 동안 크게 두 번 바뀌었다. 초기 편의점은 깔끔한 디스플레이와 영업으로 세련된 문화의 첨병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1990년대 트렌드 드라마에는 젊은 남녀가 자연스레 연애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21세기 편의점은 전국 어디서나 모든 상점을 흡수 통합한 ‘만능 곳간’으로 변신한다. 요즘은 우편 업무와 세금 대납은 물론 주민 문화공간의 역할까지 한다.

최근 편의점은 다소 복합적이다. 여전히 위세를 떨치나 경기불황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 투영된다. 고객은 높은 물가에 벌벌 떨며 홀로 끼니를 때우고, 점원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다. 점주도 본사에 휘둘리는 ‘을’이긴 마찬가지. 편의점들의 담배 판매 확충이 대기업 이익과 지자체 세수 증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란 지적도 새겨 볼 만하다. ‘촛불시위’ 때 대박 나는 도심 편의점들이 대부분 대기업 소유라는 아이러니는 또 어떤가.

그렇다고 편의점을 ‘악의 축’으로 매조질 필요는 없다. 이게 어디 그들만의 문제일까. 성마른 세계화와 가파른 양극화는 사회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삶의 질 향상과 도시공동체 재건을 위해 (편의점을) 선용해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내놓는데 다소 김이 빠진다. 이미 술이 사람을 마시기 시작한 것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편의점 사회학#접근성#주민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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