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시봉세대의 그늘을 소설로… 야만의 속살 파헤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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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클럽 잔혹사/이시백 지음/320쪽·1만2000원/실천문학사

지난해 대선에서 50대의 투표율은 82%였다. 작가의 말처럼 “거의 모든 50대가 희끗거리는 머리를 휘날리며 투표소로 달려가” 가능했던 수치다. 올해 58세인 작가는 정치적으로는 지금의 권력 지형을 만들었고, 문화적으로는 ‘7080’이나 ‘세시봉’ 세대로 불리는 한국 사회 50대의 정치의식이 형성된 과정을 이 소설을 통해 그려 낸다.

소설의 주인공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50대 남성 영탁. 사장파와 노조파로 갈린 회사에서 둘 중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골치 아픈 그는 어느 날 고교 시절 서클인 사자클럽 회원들의 연락을 받는다. 모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사자클럽 40년사를 집필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는 늘 ‘올백’을 맞다가 중학교 입시에서 딱 한 문제 틀리는 바람에 포효하는 사자를 심벌로 삼은 서울의 한 중고교에 진학한 뒤 선배들의 강요에 못 이겨 ‘국가에 애국하고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애국단체’ 사자클럽의 멤버가 된다.

소설은 현실 순응적인 영탁의 비루한 현재와 30여 년 전 사자클럽 회원들에 대한 영탁의 회상을 번갈아 보여 준다. 꿈과 낭만이 넘치던 말더듬이 소년 영탁이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거치며 어떻게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길러졌는지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비틀스의 ‘헤이 주드’를 즐겨 듣던 소년이 책가방에 도끼를 넣고 다니는 양아치로, 다시 운동권 학생의 동향을 경찰에게 알리는 대학생 프락치로 전락하는 과정은 7080세대가 지나온 삶에 드리운 짙은 그늘을 상징한다.

작가가 작품의 길목 길목에 배치한 비틀스와 레드 제플린, 딥퍼플, 김추자와 세시봉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들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읽는 이의 몰입도를 높인다. 책장 밑에 달린 가수나 노랫말에 대한 꼼꼼한 주석을 읽다 보면 이 책이 ‘응답하라 1994’의 7080 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이 복고 소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꿈 많던 젊은 사자들을 ‘보신탕집 개’로 전락시켰다가 이제 다시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물어뜯는 ‘사냥개’로 길러 낸 야만의 시대에 대한 풍자가 그득하기 때문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사자클럽 잔혹사#애국단체#운동권 학생#세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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