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혼혈유색인 女작가, 흑인사회 갈등과 치유과정 그려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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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베시 헤드 지음·이석호 옮김/240쪽·1만1000원/문학동네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부시맨’이나 ‘니그로’ 같은 모욕적 이름으로 불리며 온갖 차별과 수탈을 당했던 아프리카 흑인들. 피억압자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서로 형제애와 우정으로 단단히 결합돼 있을까? 이 소설의 대답은 ‘아니요’다. 백인들이 떠난 땅에서 서로를 왕족과 노예족으로 구분 짓고 이를 차별과 박해의 근거로 삼는 이들의 모습에는 과거 백인 억압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딜레페라는 마을의 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흑인 여성 마가렛.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백인 선교사 마가렛 캐드모어의 손에 거둬져 백인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고 선교사의 이름까지 물려받는다. 애초 그녀를 백인과 흑인 부모 사이에서 난 혼혈유색인(컬러드)으로 생각해 환영했던 딜레페 사람들은 그녀가 사실은 딜레페에서 노예로 부리는 마사르와족 출신임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진다.

마가렛을 쫓아내려고 학교 교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은 갖은 트집을 잡다 못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한다. 마가렛이 기댈 곳은 왕족인 츠나와족의 왕위 계승자 마루의 여동생 디켈레디와 디켈레디가 사랑하는 마을의 2인자 몰레카뿐. 여기에 차별 없는 새 왕국을 꿈꾸는 마루가 마가렛에게 다가가면서 이 네 사람의 운명은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에서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컬러드 사생아로 태어난 저자(1937∼1986)는 양녀 생활과 초등학교 교사 근무경험을 살려 마가렛이라는 인물을 빚어냈다. 남아공 흑인사회의 해묵은 부족 갈등과 성 차별 같은 묵직한 주제를 녹여내 아프리카 탈식민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은 소설이다.

계시나 꿈 같은 신비주의적인 요소에 의한 내용 전개나 지금도 금기시되는 부족 간 결혼이라는 비현실적 결말이 독자에게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소설 제목이자 왕자의 이름인 마루는 츠나와족 언어로 ‘뇌운이 감도는 먹구름이나 폭풍우’란 뜻이다. 작가는 아프리카 부족사회의 혼란과 상처가 한바탕 폭풍우를 거쳐야만 치유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마루#흑인#백인#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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