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달픈 현대인의 삶을 디자인한 근대의 7가지 장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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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역습/오창섭 지음/308쪽·1만3000원/홍시

아침마다 지친 몸과 무표정한 얼굴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향하는 샐러리맨, 학부모 모임에서 남의 집 아이들이 다닌다는 학원 얘기에 불안해하고 남의 집 엄마가 걸치고 온 값비싼 가방에 기죽는 아줌마…. 많은 현대인은 실상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지금 삶의 방식이 태초부터 주어진 것인 양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고 살아간다.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인 저자는 왜 많은 현대인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두려움을 느끼는 노예가 되었으며 현재를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느냐는 근본적 물음부터 던진다. 머리말에 담긴 이런 문제의식은 책을 끝까지 붙들게 하는 흡인력을 지닌다. 저자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근대, 즉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 살핀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과 감수성의 상당 부분이 처음 이 땅에 나타난 것은 고작 100여 년 전이라는 것이다.

책은 20세기 초 조선에 등장한 7가지 문화와 산물, 즉 시계, 투시법, 미인대회, 우량아 선발대회, 문화주택, 백화점, 기차를 살핀다. 1899년 경인선 선로 위를 달린 조선 최초의 기차는 근대적 시간 개념을 주입했다. 이전까지 조선은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깨고 해가 지면 일을 마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자연의 시계를 따랐다. 시간표를 지켜야 하는 기차는 조선인들을 정해진 시간을 엄수하는 규칙적 생활 체계로 몰아넣었다. 손목시계의 등장은 시계가 비로소 몸의 일부가 되었으며 인간이 시간에 종속당한다는 뜻이었다.

영화나 신문을 통해 서구인의 체형과 패션이 알려지면서 한복은 불편하고 비위생적인 옷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복을 입은 조선 여성들에겐 가슴 부위를 동여매는 방식도, 금세 더러워지는 흰 옷도, 매일 반복되는 빨래와 다듬이질도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920년대 도입된 미인대회는 여성의 몸을 평가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의 시발점이었다.

근대의 신문과 잡지 기사를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비판적 철학적 성찰을 이어가는 저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주어진 삶의 방식에 별 의심 없이 살아온 무표정한 현대인을 쿡쿡 찌르는 책이다. 부제는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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