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배에도 꺾이지 않은 철학자의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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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황광우 지음/318쪽·1만5000원/생각정원

자크 필리프 조제프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62년). 서구문명을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합이라고 할 때 헤브라이즘은 예수의 사랑, 헬레니즘은 소크라테스의 지혜로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인류의 희생양 만들기 문화’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영혼의 공명을 일으킨다. 생각정원 제공
자크 필리프 조제프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62년). 서구문명을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합이라고 할 때 헤브라이즘은 예수의 사랑, 헬레니즘은 소크라테스의 지혜로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인류의 희생양 만들기 문화’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영혼의 공명을 일으킨다. 생각정원 제공
소크라테스(기원전 470~기원전 399)는 하나의 거대한 물음표다. 세계 4대 성현 중에 그처럼 칠순을 넘겼던 석가와 공자는 물론 서른세 살밖에 못 살았던 예수에 비해서도 그의 구체적 삶은 베일에 가려져있다. 예수의 삶에 대해선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기록한 여러 복음서가 전해지지만 소크라테스의 경우엔 온전한 평전 형태의 글이 하나도 없다. 그의 삶보다는 죽음의 순간과 상황을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가장 근접한 글이다. 플라톤 같은 제자들이 남긴 언행록에 해당하는 대화편은 그의 생애에 대해선 단편적 정보만 제공할 뿐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에겐 학설이 없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토대를 뒤흔들긴 했지만 만물의 근원과 작동원리가 무엇이라든가, 인간이 어떤 존재라든가 하는 구체적 이론을 남기지 않았다. ‘네 자신을 알라’는 표현도 델포이 신전의 경구를 인용한 것이다.

베스트셀러 ‘철학콘서트’를 쓴 저자는 이 거대한 인간물음표를 풀어내기 위해 인간 소크라테스의 실존적 상황에 눈길을 돌린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전쟁 승리 이후 아테네가 제국주의적 패권국가로 절정을 누리다가 27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04년)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해 몰락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는 이런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오만을 비판하면서 페르시아 전쟁 이전의 질박하고 경건한 삶으로 돌아갈 것을 주창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사치와 향락에서 벗어나 영혼의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서 아테네 민주정의 영웅 페리클레스와도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신을 모독하고 청소년을 타락시켰다고 고소당했을까. 소크라테스가 사랑했던 제자들 때문이었다. 아테네 최고의 매력남이었지만 펠로폰네소스전쟁 와중에 아테네를 배신하고 스파르타에 투항한 알키비아데스와 스파르타의 후견 아래 동포 1500명을 살육했던 아테네 과두정권의 지도자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500명이나 되는 배심원 중 280명이 유죄를 선고하고 다시 만장일치로 사형을 판결한 배경엔 이런 요소가 작동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제국주의적 오만에 가득 찬 삶을 살다가 그의 경고가 현실로 닥치자 분풀이하듯 소크라테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저자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아테네인들을 향한 한 편의 긴 고발문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 중심이던 철학을 윤리학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우리의 삶이 논리가 아니라 역설로 가득 차 있으며 이를 제대로 살아 내려면 이성이 아니라 사랑에 의존해야 함을 온몸을 던져 입증했다.

소크라테스와 관련한 방대한 저술을 섭렵하면서 ‘단 한 권의 소크라테스전’이란 부제에 걸맞은 책을 국내 저자가 써낸 게 반갑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랑하라#황광우#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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