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부산은 넓다’를 손에 든 순간 든 생각이다. 기자는 부산에서 자랐다. 물론 어릴 땐 부산이 최고인 줄 알고 컸다. 서울행 기차 안에서 ‘부산 싸나이’ 자존심은 잃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수도 서울은 정말 컸다. 멀리 떨어진 고향 부산은 점점 작아 보였다. 그런데 이 책을 넘길 때마다 “맞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저자는 경제 통계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산의 넓은 역사적, 문화적 품을 책 한 권에 담았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서울 출신이지만 10년 전 부산 동해안별신굿의 매력에 반해 부산 문화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부산구술사연구회와 산동네(서울로 치면 달동네)를 연구하며 부산 사람들에게 반했다. 저자의 눈에 부산 사람은 거칠어 보이지만 내면은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저자에게 부산의 정체성을 물으면 ‘부산은 항구다’라고 답한다. 책은 부산항을 노래한 가요들을 소개한다. 1940년 가수 남인수 씨는 ‘울며 헤진 부산항’을 불렀다. 기타 반주에 따라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는/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 달빛/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더구나 정 들인 사람끼리 음음’이라고 노래했다. 부산항을 출발한 관부연락선에 실린 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애절함이 가사에 담겼다. 부산항의 이별과 만남의 역사는 대규모 해외 이민단, 파월 장병, 외항 선원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부산항의 정서가 가왕 조용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썼다. 1975년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 국민 가수가 됐다. 젊은 나이에 대연각 호텔 화재로 숨진 가수 김성술의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개작하고 편곡해 다시 만든 노래였다. 노래의 성공에는 그의 음악 역량도 있었지만 호소력 짙은 부산항이란 이름 그 자체, 그리고 선배들이 부른 1960년대 부산항 노래들이 깔려 있었단다.
이제는 거꾸로 부산이 새로운 시대 정서, 유행을 만들어 낸 조용필을 배울 때라고 말한다. 부산항은 경쟁 항구에 밀려 그 기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부산은 각종 통계에서 ‘제2의 도시’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그러나 저자는 헌집 부수고 새집 짓는 토건 이념으로 부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경계한다. 오히려 다른 도시를 따라하면 2등을 벗어나지 못하니 부산만이 지닌 가치를 살리잔다. 부산 문화를 살피려면 이 책을 만든 것과 같은 인문정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엔 1964년 해운대 해수욕장에 나타나 해운대를 바캉스 1번지로 만들어 준 250년 된 거북이, 영도를 떠난 사람은 3년 안에 망하게 한다는 ‘영도 할매 전설’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현장 답사에 신문기사나 사료를 더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다른 지역 향토학자들이 이 책에 자극을 받아 분발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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