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책]아버지 돌보는 18세 “사는 게 뭘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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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강/김선희 지음/212쪽·1만 원/사계절

이삿짐센터 사장이었던 건장한 아버지가 어느 날 일곱 살 꼬마가 됐다. 사다리차에 실려 7층에서 내려오던 서랍장이 아버지의 머리를 가격한 뒤부터다. 아버지에게 아내는 엄마가, 큰아들은 큰형이, 둘째아들은 작은형이 돼 버렸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 치킨집을 차렸고, 취업준비생인 형은 가게를 도와야 했다. 아무리 바빠도 형이 적은 주문서는 반듯한 정자체였다. 수없이 이력서를 써 온 덕분에. 18세 소년 길동은 졸지에 아버지의 보호자로 육아 아닌 육아를 떠맡고 만다. 7세 아버지는 틈만 나면 지붕에 앉아서 서쪽 하늘을 보며 말 달리는 시늉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의 본능에 눈을 번쩍 뜰 나이에, 길동은 ‘육아 스트레스’를 ‘야동’으로 풀었다. 영화배우 케이트 윈즐릿을 거쳐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와 상상 속에서 화끈한 밤을 보냈다. 하지만 인생살이는 고독했고 성욕보다 더 외로운 건 없었다.

무색무취한 생활 가운데 길동의 관심사가 하나 더 생겼다. 매운맛에 집착하는 소녀 오미령. 그녀가 매운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식도락 인터넷 카페 ‘더 빨강’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 길동은 카페 회원으로 가입한다. 길동은 매운 건 질색이지만 얼큰해물지옥탕, 매운짬뽕을 함께 먹으며 미령의 비밀과 더불어 매운맛의 묘미를 알아 간다.

길동은 57세 아버지의 거친 일상을 회상한다.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자식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는 집에서 늘 혼자였다. 길동은 아버지가 50년 세월을 잃었지만 남은 삶이 가장 빛나는 일곱 살로 계속될 테니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길동의 형이 주식으로 없는 집안의 전 재산을 날려 버리고 잠적한 뒤 미령과 카페 회원들은 10월의 마지막 날 알쏭달쏭한 여행을 떠난다. 유쾌하고 통통 튀는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욕망과 결핍이 무수히 교차하는 삶에서 진짜로 살아간다는 것은 뭘까.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더 빨강#성욕#아버지#식도락 인터넷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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