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핏빛 잉크로 쓴 서부 개척시대 아메리칸 드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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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선 1/필립 마이어 지음·임재서 옮김/445쪽·1만4800원/올

이 책은 미국의 28번째 주가 되는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독립을 선언한 날 태어난 엘리부터 증손녀 앤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매컬로 가문의 영욕(榮辱)의 역사를 통해 다시 쓴 ‘텍사스판 미국 건국사’다. 1832년에서 2012년까지 200년 가까운 기간의 한 가문의 연대기인 이 책은 역사적 실체로서의 ‘아메리칸 드림’이 실제로는 핏빛 투쟁과 약탈의 결과물이 아니었느냐고 묻는다.

스코틀랜드 이주민의 아들인 엘리는 13세 때 코만치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어머니와 누나를 잃고 형과 함께 납치당한다. 시간이 흘러 ‘하얀 피부’의 코만치 전사로 자라 인디언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만 인디언을 잡으러 다니는 텍사스 순찰대가 되고 마침내 작은 목장의 주인이 된다. 빈털터리 꼬마에서 시작한 매컬로 가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목축업의 몰락과 석유산업의 부흥을 거치며 텍사스의 석유재벌로 탈바꿈한다.

작가 필립 마이어는 매컬로 집안의 세 인물 엘리, 피터(엘리의 막내아들), 앤(엘리의 증손녀)의 시점을 교차해가며 텍사스와 미국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데뷔작 ‘아메리칸 러스트’(2009년)로 미국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저자의 문장은 다채롭다. 엘리의 시점일 때는 건조하고, 피터의 시점에선 분노와 허무가 교차한다. 앤의 시점에 설 때는 담담하다.

전체적으론 ‘서부를 개척한 영웅들’이라는 미국 건국사를 구성하는 신화의 한 축이 실은 원주민인 인디언과 라틴계 이주민에 대한 약탈과 살인을 통해 쌓아올린 역사임을 보여주며 그 가면을 벗긴다. “그(엘리)는 등유로 전부 다 흠뻑 적신 후에 성냥을 그었다. 나(피터)는 종이들이 말려들며 불길이 책상 전체에 퍼져나가더니 벽을 타고 올라 모든 지명이 스페인식 이름이었을 때 제작된 커다란 텍사스 지도에 옮겨 붙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262쪽)

이 책은 당대 텍사스 정착민과 인디언의 풍습도 생생히 되살려 냈다. 코만치 인디언의 사냥 풍습이나 정착지 습격, 성생활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생활사 자료를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상·하 2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다음 달 중순경 하권 출간 예정.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텍사스#더 선#아메리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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