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쉿∼ 엄마에겐 비밀”… 아빠와 아들의 힐링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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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하차/기타무라 모리 지음/이영빈 옮김/298쪽·1만3000원/새로운현재

저는 이 책 저자의 여섯 살 아들입니다. 먼저 제 아빠를 소개하겠습니다. 마흔이 되기 전에 큰 잡지사 편집장이 되셨고 편집장이 된 지 2년 만에 두 배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답니다. 엄마는 ‘승승장구’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아빠에 대해 아는 건 그게 전부였습니다. 아빠는 너무 바쁘셔서 일주일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어쩌다 단둘이 돼도 귀찮은 잔소리뿐이었습니다.

그런 아빠가 어느 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며. 어이가 없었습니다. 일벌레인 자기가 언제부터 가족을 챙겼다고. 그 최대 피해자가 저였습니다. 아빠가 자기 대신 돈을 벌어야 하는 엄마 빼고 저랑 단둘이서 여행을 다니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저처럼 어린 아이가 엄마도 없이 100kg이 넘는 낯설고 불편한 중년아저씨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라는 건지.

그런데 여행 도중 기차가 갑자기 정지하자 아빠는 창백해진 얼굴로 절 버려두고 허겁지겁 달려가더군요. 무서운 생각에 아빠를 쫓아갔습니다. 아빠는 기관차까지 달려가 기관사에게 “제발 문이라도 좀 열어 달라”고 애원하는 거였습니다. 그때까지 놀란 제가 계속 쫓아왔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때 아빠가 회사를 그만둔 진짜 이유를 눈치챘습니다. 아빠는 일만 하다가 마음의 병이 걸린 겁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 공포가 엄습하는 병. 그걸 공황장애라고 한다더군요.

아빠는 그 병을 숨겼습니다. ‘죽어라 일만 하더니 꼴좋네’라는 말을 듣는 게 창피해서. 그런 아빠가 불쌍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아빠의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1년간 우리 둘이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쉿, 엄마에겐 절대 비밀”을 하나둘씩 쌓아간 기록입니다. “이게 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야”라며 정작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줄 모르는 아빠들, 성공이 모든 걸 보상해줄 것이라 믿는 아빠들이 한번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잡지사 기자 출신이라 글을 아주 잘 쓴답니다. 다만 우리 둘이 다닌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담긴 일본 지도가 빠진 게 아쉽네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도중하차#아빠#여행#공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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