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한-일 풀빵의 명인’ 父子대결… 승자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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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이 어때서?/김학찬 지음/200쪽·1만1000원/창비

다음은 소개팅의 한 장면. 호텔 커피숍에 들어선 여자가 남루한 남자의 행색을 보고 한숨 먼저 쉰다. 하지만 남자의 한마디에 분위기는 반전된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아버님의 일을 잇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정도는 됩니다. 하하.”

여자는 갑자기 눈앞에 다이아몬드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참 검소하게 입으세요”라며 남자를 치켜세운 여자의 관심은 이제 기업체의 업종과 규모에 쏠린다. 여자가 조바심을 낼 때쯤 남자는 말한다. “아버지와 함께 풀빵을 굽는데요.” ‘한방’ 먹은 여자의 멍한 표정.

김학찬 씨
김학찬 씨
소설은 이렇게 첫 장면부터 웃긴다. 작가는 톡톡 튀는 대화와 상황을 깨는 반전 설정으로 독자를 키득키득 웃게 만든다. “철저히 재미있게 가보자고 썼다”는 작가의 말대로 작품 속에선 그늘을 찾기 어렵고, 시종일관 생기발랄하다.

사실 인물의 설정이나 상황은 그리 웃기지만은 않다. 붕어빵의 명인을 아버지로 둔 ‘나’는 고교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정도 성적이었지만 붕어빵이 좋아 대를 잇기로 한다. 하지만 군대에 가서 부적응하면서 ‘관심 사병’이 됐고, 결국 군대 생활 내내 붕어빵만 굽는 ‘보직’을 받는다. 지겹게 붕어빵을 구어 트라우마에 시달린 그는 붕어빵에 흥미를 잃고, 제대 후 일본 여행에서 우연히 문어를 넣은 일본식 풀빵인 다코야키 명인을 만난다.

소설은 단순하다. ‘나’가 다코야키 명인으로 나아가는 성장기를 그린 것. 소설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아버지가 끈질기게 “붕어빵의 세계로 복귀하라”고 설득하는 것, 그리고 ‘나’의 제자가 된 임용고시 준비생 현주와의 로맨스다. 또 도넛을 파는 과묵한 윤 씨,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순박한 순대장수 박 씨 아저씨 같은 조연들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보다 풍성한 맛을 보여준다.

가장 큰 매력은 소재 선택에서 빛난다. 누구에게나 친근한 길거리 음식인 붕어빵과 다코야키를 파고들어 그 속에서 장인정신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다코야키를 굴리는 송곳을 다루기에 적합한 손은 무엇일까. “손가락이 길면서 손바닥이 너무 넓어서도 안 된다. 손바닥이 너무 넓으면 회전을 줄 때 손목에 조금씩 무리가 가고 다코야키를 오래 구울 수 없다.” 심지어 ‘나’는 손과 손목의 감각 발달을 위해 피아노 체르니 30번까지 연습한다.

“붕어빵의 맛은 꼬리가 결정한다” “다코야키는 한 알 한 알 같으면서도 다른 맛을 내야 한다”는 풀빵 명인들의 얘기도 흥미롭다. 음식 만화의 신세계를 보여준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부풀어 오르던 기대감은 마지막에 살짝 김이 빠진다. 붕어빵의 명인인 아버지와 다코야키의 떠오르는 신예인 나와의 대결 장면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 예선만 있고 결승은 건너뛴 느낌이랄까. 문어 없는 다코야키, 팥 없는 붕어빵을 씹은 느낌처럼 허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붕어빵#다코야키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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