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종교는 미래를 이끌 수 없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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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달라이 라마 지음·이현 옮김/248쪽·1만3500원·김영사

소풍 뒤 산을 내려가고 있는 히말라야 남쪽 비르 마을의 두 여성. 동아일보DB
소풍 뒤 산을 내려가고 있는 히말라야 남쪽 비르 마을의 두 여성. 동아일보DB
인류에게 종교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수많은 사람이 종교를 통해 삶의 위안을 얻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이 종교 때문에 삶의 파탄을 겪고 있다. 굳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뉴스에서 접하는 충돌과 분쟁의 상당 부분이 종교 간의 갈등이다. 그러한 갈등은 가까이는 이웃 간의 화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심지어 대량살상을 야기하고 국제난민의 발생을 초래한다.

그 원인이 종교라기보다는 종교로 포장된 정치적이거나 기타의 세속적인 욕망에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종교가 악용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수많은 종교 구성원이 그러한 갈등의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다.

망명 티베트의 지도자를 넘어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종교는 더이상 미래를 이끌 수 없다. 이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불교라는 종교의 지도자인 그가 종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달라이 라마의 과감함과 솔직성이 있으며, 그 인격의 위대함이 있다. 종교가 아니라 특정 단체의 지도자라고 해도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한계를 넘어선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고 주장한 것이 종교를 무시하거나 인류에 대한 종교의 기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역할을 지구촌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 개별성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종교와 보편적 도덕을 분리하자는 제안에서 뚜렷해진다. 개별 종교는 더이상 그 자체로는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체의 형이상학적 입장에 입각해 도덕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도덕의 확립을 통한 지구촌 인류공동체의 형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 보편적 도덕에 대하여 현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현세적으로’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세속적 가치를 추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그의 책 후반부는 불교적인 도덕을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곧, 윤회나 업 등 현대적 합리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보편적 지성에 호소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다른 종교전통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불교로 개종하거나 불교적인 내용을 어렵게 배우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친숙한 전통을 소중히 하라고 이야기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인간적 경험과 심리학을 비롯한 최신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활용한다. 그는 권위적인 종교지도자나 난해한 사실을 늘어놓는 학자가 아니라 누구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논의를 전개하는 현명하고 합리적 대화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말 번역도 깔끔하고, 친절하면서도 간명한 역자 주는 이 책을 더욱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류제동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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