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아 단독]북미정상의 ‘세기의 런치’,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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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데이비드 세니아 셰프 인터뷰

《전 세계가 주목한 도널드 트럼프(72)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34)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 두 사람을 위해 ‘세기의 런치’를 만들어낸 사람은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총괄 셰프 데이비드 세니아 씨였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한국인 셰프 올리비아 리가 ‘여성동아’의 요청으로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북미정상을 위해 ‘세기의 런치’를 만든 셰프 데이비드 세니아.
북미정상을 위해 ‘세기의 런치’를 만든 셰프 데이비드 세니아.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세계사적으로뿐 아니라 나 개인에게도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다. 한국인으로서 회담 진척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중, 우여곡절 끝에 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간 듯한, 동시에 세계의 중심에 와 있는 듯한 흥분을 느꼈다.

나는 한국에서 셰프로 활동하다가 프랑스인 셰프와 결혼해 2014년부터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다. 덕분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의 흥분된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면서 ‘세기의 런치’를 꼼꼼히 분석할 기회가 있었다. ‘여성동아’의 취재 요청을 받은 뒤 다른 사람보다 쉽게 카펠라 호텔 식당과 접촉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부부가 모두 요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양국 정상들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항이 보안에 부쳐진 만큼 나의 이메일 질문에 대해 카펠라 호텔과 총괄 셰프 데이비드 세니아 씨의 대답은 매우 신중했으며, 몇몇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대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음은 질문과 답 요지.
북미 정상이 만나 식사한 카펠라 호텔 전경
북미 정상이 만나 식사한 카펠라 호텔 전경

-누가 북미정상회담의 메뉴를 만들었나.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총괄 셰프인 데이비드 세니아(Culinary Director, Chef David Senia) 씨였다.

-미국과 북한 측에서 메뉴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하거나 승인을 받도록 요청했나.
물론 그렇다. 우리는 북미정상회담이라는 목적을 위해 아주 특별한 메뉴를 만드는 것이니까(호텔 관계자가 오찬 준비를 위해 전날 김정은의 수행 요리사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 인분을 만들도록 요청받았나.
16인분이다(실제로 ‘런치’에 참석한 사람은 15명이었다).

-한식 재료는 어떻게 마련했나. 북한 측에서 음식 재료를 제공했나.
그 내용은 우리가 말할 수 없다.

-한식 메뉴로 특별히 ‘오이선’과 ‘대구조림’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 측에서 대구를 제공했나.
그런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

-카펠라 호텔의 데이비드 세니아 씨 팀에 한국인 요리사가 있는가. 조리 방법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 제공된 아주 특별한 메뉴는 전적으로 데이비드 세니아 씨가 구상한 것이다.
북미 정상의 첫 번째 ‘비즈니스 런치’ 모습. 출처 노동신문
북미 정상의 첫 번째 ‘비즈니스 런치’ 모습. 출처 노동신문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총괄 셰프 데이비드 세니아 씨는 프랑스 남부 니스 출신의 세계 정상급 요리사로, 한 인터뷰에서 식재료가 자란 곳의 자연과 요리의 조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일본 오사카에 살면서 셰프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어 동서양의 식재료를 조화롭게 사용할 줄 아는 셰프라는 평이다.

실제로 그가 ‘구상’하고 제공한 음식에 대해, 서양 요리와 한식 그리고 싱가포르 현지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자극적이지 않은 메뉴의 구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 정상의 역사적 첫 악수의 배경이 된 카펠라 호텔 풀 윙에 똑같은 수로 배열된 국기 등에서 알 수 있듯, 이 메뉴 역시 북한과 미국이 동등한 파트너임을 보여주기 위해 세심하게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이 발표한 메뉴를 살펴보자.

먼저 스타터로는 ‘아보카도 샐러드를 곁들인 전통 새우 칵테일(서양식)’과 ‘허니 라임 드레싱을 곁들인 신선한 문어와 그린 망고 크라부(말레이시아 전통 음식)’ ‘오이선(한식, 오이에 칼집을 내고 채썰어 볶은 쇠고기와 표고버섯, 달걀지단으로 속을 채워 익힌 다음 식촛물을 끼얹어 내는 궁중 음식)’이 제공되었다.

메인 코스로는 서양식 ‘감자 도피노아즈(얇게 썬 감자에 크림과 치즈를 곁들여 층층이 쌓아 올린 그라탱)와 삶은 브로콜리, 레드 와인 소스를 곁들인 쇠갈비 콩피(마리네이드한 고기를 낮은 온도의 기름에 넣어 장시간 익히는 요리)’, 아시아 스타일 ‘XO 칠리소스를 넣어 만든 양저우식 볶음밥(각종 채소와 고기, 새우가 들어간 볶음밥)과 스위트 앤 사우어 돼지고기 튀김(탕수육)’, 한식 ‘무와 채소를 넣어 간장으로 조려낸 대구조림’ 등 3가지가 선정되었다.

디저트는 프렌치 스타일로 다크 초콜릿 가나슈 타르트, 체리 쿨리를 곁들인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트로페지엔(생크림과 페이스트리 크림이 들어간 브리오슈 파이)이었다.

이 중 현지에서도 단연 화제가 된 메뉴는 한글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오이선’과 ‘대구조림’이었다. 오이선과 대구조림이 대체 무엇인가! 전 세계의 매체들이 이를 분석했다.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한 한식 오이선.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한 한식 오이선.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 오이선은 궁중 음식이다. ‘선’이란 주재료에 칼집을 내고 쇠고기나 버섯, 채소로 속을 채워 찐 후 식초나 겨자장을 얹어 완성하는 요리법을 말한다. 한국에서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본 사람들은 익숙한데, 이것이 실기 메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편 탱글탱글한 부드러운 살이 일품인 대구는 추운 겨울날 얼큰하고 속 시원하게 깔끔한 지리나 매운탕으로 조리해 먹는 생선이다. 무와 채소에 간장을 넣고 조린 달콤 짭조름한 대구조림은 대구를 먹을 줄 아는 외국 사람들에게 적당한 한식이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이틀 전인 6월 10일 오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중심지 오차드에서 500m 떨어진 탕린 로드에 위치한 북측 숙소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 도착했다. 이때 1백여 명의 수행원들이 동행했는데, 미리 식재료들을 싣고 온 냉동차들도 눈에 띄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호텔 음식 대신 북한에서 공수한 식재료로 만든 특식을 룸에서 먹은 것으로 전해지며 수행원들은 호텔 조식당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쌀국수와 김치 그리고 쌀밥이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다고 세인트 리지스 호텔 관계자가 귀띔해주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 전경. 출처 세인트리지스 홈페이지
김정은 국무위원장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 전경. 출처 세인트리지스 홈페이지
사실 세인트 리지스 호텔의 고급 중식당 ‘얀팅(Yan Ting)’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형, 고 김정남의 단골 식당으로 싱가포르 교민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 묵으면서 이곳의 음식을 맛보았을지가 교포 사회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정확한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한편 관심을 모았던 트럼프식 ‘햄버거’ 정상회담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대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탄경호단’ 일부가 맥도날드 햄버거 ‘빅맥’을 먹는 모습이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포착돼 재미있는 일화로 화제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햄버거 정상회담을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완전히 익힌 ‘웰던’ 고기만 먹고 다이어트 콜라를 끊임없이 마시는 식습관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는 아주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대통령으로 유명한데 카펠라 호텔의 북미정상회담 메뉴는 마음에 들었을까.

정확한 답은 들을 수는 없었지만 북미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카펠라 호텔 직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트럼프 대통령의 배지와, 미국 국기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인이 새겨진 키세스 초콜릿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물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펠라 호텔 직원들에게 키세스 초콜릿을 선물했다. 사진은 백악관에서 선물용으로 만든 키세스 초콜릿.
트럼프 대통령은 카펠라 호텔 직원들에게 키세스 초콜릿을 선물했다. 사진은 백악관에서 선물용으로 만든 키세스 초콜릿.
미디어정보분석회사 멜트워터는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싱가포르가 얻은 홍보 가치가 무려 2억7천만 싱가포르 달러(약 2천2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고, 싱가포르 매체인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에선 싱가포르는 북미정상회담에 들어간 비용 1백60억원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현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본 한국인으로서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도 값진 결과를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올리비아 리(이영희)는
푸드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 교수, 마케팅 디렉터, 요리 쇼 진행자와 요리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일을 하며 ‘나쁜 여자의 착한 요리’ ‘김치통 샐러드’를 펴냈다. 미슐랭 2스타 셰프 세바스찬 레피노이(Sebastien Lepinoy)와 결혼해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다.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AP
디자인=최정미

<이 기사는 여성동아 2018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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