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막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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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세상 사람들은 (무릉)도원이 좋다지만/세상사 잊을 만한 도원은 만나지 못했네/산촌 막걸리(山(료,요))에 취해 세상사 잊을 수만 있다면/사람 사는 곳 어딘들 도원이 아니랴.’

 조선 중기 문신 조임도(1585∼1664)의 시다(간송집). ‘요((료,요))’는 막걸리다. ‘산료(山(료,요))’는 산촌, 산골의 막걸리다. 거칠고 험한 막걸리다. 거친 술에라도 취할 수 있다면 사람 사는 곳이 모두 무릉도원이라는 뜻이다.

 막걸리는 이름이 많다. 탁한 술이라서 탁주(濁酒)다. 순조 즉위년(1800년) 9월, 경상감사 김이영과 안핵사 이서구가 인동부(경북 구미)에서 일어난 ‘장시경의 역모사건’을 보고한다. 내용 중에 ‘장시경이 (사람들을 모은 후) 막걸리(탁주)를 내어주면서 나누어 마시게 했다’는 구절이 있다(조선왕조실록). 막걸리를 탁주라고 표현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 최립(1539∼1612)도 ‘예쁜 꽃이 집 모퉁이에 활짝 핀 때에/담 너머로 건네받는 탁주’라고 노래했다(간이집).

 청주는 맑고 탁주는 흐리다. 탁주는 흰 색깔을 띤다. 막걸리의 또 다른 이름이 백주(白酒)였던 까닭이다. 중국인들은 증류주를 백주라고 부르지만,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의 ‘백주시(白酒詩)’를 보면 우리의 백주는 막걸리다. ‘예전 젊었을 때 백주 마시기를 좋아했다. 맑은 술을 만나기 힘들었으니 흐린(濁) 술을 마셨다. 높은 벼슬에 오른 후, 늘 맑은 술을 마시게 되었으니 다시 흐린 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버릇이 되었기 때문인가?’ 이규보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 녹봉이 줄어들고 쉬이 맑은 술을 구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백주를 마시게 되었다”고 자탄한다. 이 시에는 중국의 두보가 ‘막걸리에는 묘미가 있다’고 했다는 내용이 덧붙어 있다. 두보는 막걸리를 ‘탁한 막걸리(濁(료,요)·탁료)’라고 표현했다.

 막걸리의 등급(?)은 어떻게 정했을까? 뚜렷한 기준은 없었으나 좋은 막걸리와 거친 막걸리는 분명히 나뉜다. 좋은 막걸리는 정성껏 빚은 후, 잘 걸러서 물을 타지 않은 것이다. 물 타지 않은 원액을 순료(醇(료,요))라 불렀다. ‘순(醇)’은 물을 타지 않은 무회주(無灰酒)다. 순료는, 진하고 짙은 술, 즉 농주(濃酒)였다.

 성종 2년(1471년) 6월, 대사헌 한치형이 상소문을 올린다. 내용은 환관들을 조심하라는 것. 환관들은 영리하고 말솜씨가 유창하다. 입속의 혀 같다. 군주 가까이서 비위를 맞추며 아첨한다. 한치형은 “(환관에게 빠져들면) 순료를 마시면서 미처 취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상소한다. 환관의 감언이설을 경계하지 않으면 마치 진국 막걸리(순료)를 마신 것같이 취해서 여러 가지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세종 15년(1433년) 10월, 조정에서 술의 폐해를 경계하는 내용을 반포한다. 내용 중에 중국 후위(後魏)의 모주꾼 하후사의 이야기가 있다. ‘하후사는 술을 좋아했다. 상을 당해서도 슬퍼하기는커녕 순료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아우와 누이는 굶주림과 추위를 피하지 못했고 결국 하후사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죽었다.’(조선왕조실록)

 고려시대 대학자 가정 이곡(1298∼1351)은 후한 말 오나라 주유의 인품을 두고, “마치 순료를 마신 듯,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오나라 장군 정보는 “주유와 사귀면 마치 순료를 마신 듯, 마침내 스스로 취한 줄을 모른다”고 했다(삼국지 오서 주유전). 이곡의 아들 목은 이색(1328∼1396)도 “맛있는 음식과 순료는 입에 매끄럽고 향기로우니/마치 보약처럼 술술 장에 들어간다”(목은시고)고 했다. 선조 때의 문장가 차천로(1556∼1615)는 약포 정탁(1526∼1605)에게 순료를 접대하고 시를 남겼다. ‘하룻밤 잘 묵힌 순료를 앙금도 거르지 않으니/석청처럼 달고 우유처럼 깔끔하다.’(오산집)

 좋은 술, 순료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조선 후기 문신 서하 이민서(1633∼1688)는 “산으로 놀러 다니는 일과 술 마시는 일은 같은데, 여럿이는 시끄럽고 번잡스러우며 혼자는 무료하다”고 했다. 금강산에 갔을 때 미처 동행이 없어 쓸쓸했는데 다행히 산속에서 사람을 만났으니 ‘마치 순료를 만난 것같이 기쁘다’고 했다(임하필기). 오주 이규경은 중국 기록을 인용해 나이든 이의 겨울철 섭생법으로 ‘새벽에 일어나 순료를 마시고 양지쪽에 앉아 머리를 빗는다’고 했다(오주연문장전산고). 좋은 술은 때로는 약이 된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막걸리#순료#이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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