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빈티지 브로치’를 보면 한 시대의 문화양식을 알수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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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아르 데코’ 브로치 수집가 홍익대 간호섭 교수를 만나다

조심스레 함을 열자 100년 전의 아름다움이 흠씬 다가왔다.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오묘한 매력의 ‘아르 데코(Art Deco)’ 브로치들이었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아르 데코 미장센을 완벽하게 보여줬던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저택에 직접 찾아간 느낌이었다고 할까.

19세기 ‘아르 데코’ 브로치 수집가 홍익대 간호섭 교수
19세기 ‘아르 데코’ 브로치 수집가 홍익대 간호섭 교수
오랜 세월 동안 고상하게 빛이 바랜 빈티지 브로치들은 패션디자이너이자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간호섭 교수(48 ·사진)의 개인 소장품이다. 16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간 교수는 “아르 데코는 패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음악과 건축 등 당시 사람들이 향유했던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한 시대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아르 데코 양식은 프랑스에서 생겨났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그 덕에 미국은 살아있는 ‘아르 데코’ 박물관이 됐다. 사진은 간호섭 교수가 직접 찍은 록펠러센터의 ‘에르메스’ 벽화. 직선으로 단순화된 아르 데코양식이 특징이다.
아르 데코 양식은 프랑스에서 생겨났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그 덕에 미국은 살아있는 ‘아르 데코’ 박물관이 됐다. 사진은 간호섭 교수가 직접 찍은 록펠러센터의 ‘에르메스’ 벽화. 직선으로 단순화된 아르 데코양식이 특징이다.
아르 데코는 1920년대 서구권을 풍미했던 미술 양식이다. 지그재그, 햇살무늬, 쉐브론 등 기하학적인 장식을 고전적이고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색채는 화려하게 사용해 우아한 멋이 있다. 1922년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 발굴로 이집트 유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이집트와 중국, 일본 등 오리엔탈 디자인 요소가 결합하면서 아르 데코가 완성됐다. 간 교수는 “동양의 문화가 서양의 한 시대를 장악한 미술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학문적 호기심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업무 때문에 해외에 나갈 일이 많은데, 요즘은 어디에 가도 패스트 패션이 거리를 잠식했다는 느낌을 받아요. 획일화된 아름다움에 지칠 때면 골목골목에 숨은 빈티지 숍을 방문하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보물’ 찾기에 나서는 거죠.”

1920년대 아르 데코 더블 클립 브로치. 바게트 컷으로 세공된 다이아몬드가 특징.1920년대
1920년대 아르 데코 더블 클립 브로치. 바게트 컷으로 세공된 다이아몬드가 특징.1920년대
1920년대 아르 데코 브로치. 기하학적이고 직선적인 모양이 아르 데코 양식을 잘 표현한다.
1920년대 아르 데코 브로치. 기하학적이고 직선적인 모양이 아르 데코 양식을 잘 표현한다.
40여 개의 빈티지 브로치 중 간 교수가 맨 처음 발견한 것은 1920년대의 아르 데코 ‘더블 클립 브로치’다. 3년 전 미국 화이트 샌드 사막으로 광고 촬영을 가던 도중, 작은 마을의 허름한 빈티지 숍에서 발견했다. 둥근 모양으로 세공된 보통의 다이아몬드와 달리 ‘바게트 컷’으로 다듬어진 각진 다이아몬드가 브로치 한 가운데 박혀 있다. 양쪽으로 분리돼 클립처럼 활용할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그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브로치 디자인에 마치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이었다”며 “자식도 첫 정이라는 게 있듯, 40여 개의 브로치 중에서도 처음 구매한 이 브로치를 가장 아낀다”고 말했다.

1920년대 아르 데코 브로치. 푸른 사파이어와 백금 위의 정교한 장식이 인상적이다.
1920년대 아르 데코 브로치. 푸른 사파이어와 백금 위의 정교한 장식이 인상적이다.
1920년대 아르 데코 더블 써클 브로치. 천연 진주의 빛깔이 고상하다.
1920년대 아르 데코 더블 써클 브로치. 천연 진주의 빛깔이 고상하다.
간 교수는 올해 10월 ‘파리, 뉴욕 그리고 아시아(Paris, New York and Asia)’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미국 뉴욕에서 꽃을 피우고, 아시아의 동양적인 미(美)까지 받아들여 독특하게 피어났던 아르 데코 양식을 전반적으로 다룬 내용이다. 그가 수집하고 있는 아르 데코 브로치 역시 연구 대상. 그가 학생 시절을 보냈던 미국의 거리 곳곳에 여전히 아르 데코 양식이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점도 연구의 출발 지점이 됐다. 그는 “뉴욕을 대표하는 크라이슬러 빌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이 모두 아르 데코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며 “학생 때는 매일 거리를 지나면서도 몰랐는데 지금 보니 모든 게 연구 대상이었다”며 웃었다.

1930년대 아르 데코 윙 브로치(위)와1900년대 아르 누보 클림트 스타일 브로치.
1930년대 아르 데코 윙 브로치(위)와1900년대 아르 누보 클림트 스타일 브로치.
그는 특히 1900년대 초반의 건축, 미술과 그가 수집하는 브로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때 희열을 느낀다.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인 날개 모양의 1930년대 브로치는 록펠러센터의 ‘에르메스’ 신 벽화와 꼭 닮아있다.

금색과 검은색의 과감한 대비, 소용돌이치는 선이 눈길을 사로잡는 1900년대의 브로치는 마치 클림트의 작품을 옷깃에 달 수 있도록 축소해 둔 듯하다. 커다란 눈을 형상화한 것 같은 전체적인 모양은 클림트의 작품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속 인물이 입은 옷의 문양과 흡사하다.

간 교수가 FIT의상박물관에서 발견한 드레스. 아직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작품으로, 동양에서 영향을 받아 자개로 만든 스팽글을 하나하나 엮어 영롱한 빛을 낸다.
간 교수가 FIT의상박물관에서 발견한 드레스. 아직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작품으로, 동양에서 영향을 받아 자개로 만든 스팽글을 하나하나 엮어 영롱한 빛을 낸다.
동양적 요소를 적극 수용한 아르 데코 특유의 흐름도 발견할 수 있다. 다섯 개의 큼지막한 꽃잎 형상을 한 1920년대의 브로치는 동양에서 주로 사용하던 자개로 만들어졌다.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다른 브로치들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간 교수는 “이번 연구를 위해 찾은 FIT 의상박물관에서 아르 데코 시기의 미공개 의상을 몇 점 확인했다”며 “그중 자개로 만든 스팽글을 하나하나 이어 단 드레스를 보는 순간, 이 브로치와의 연결지점을 발견한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1870년대 아르 누보 브로치.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 경매에서 간 교수가 낙찰 받은 것.
1870년대 아르 누보 브로치.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 경매에서 간 교수가 낙찰 받은 것.
단순하고 직선적인 아르 데코 양식을 잘 보여주는 1920년대 브로치들.
단순하고 직선적인 아르 데코 양식을 잘 보여주는 1920년대 브로치들.
빈티지 브로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독특한 문화 양식을 압축해 놓은 작은 박물관이라는 게 간 교수의 설명이다.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하나를 다는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를 표현할 수 있어 지금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공을 세운 사람의 가슴팍에 달아주는 훈장에서부터 시작한 브로치의 역사는 폐쇄적인 사교모임의 회원에게 증정하는 브로치, 국회의원의 금배지, 이웃을 돕는다는 의미의 사랑의 열매 배지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1910년대 에드워디안 양식의 바 브로치. 아르 데코와는 또 다른 영국만의 미를 느낄 수 있다.
1910년대 에드워디안 양식의 바 브로치. 아르 데코와는 또 다른 영국만의 미를 느낄 수 있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아르 데코 양식을 잘 보여주는 1920년대 브로치들.
단순하고 직선적인 아르 데코 양식을 잘 보여주는 1920년대 브로치들.
때로는 국가 간 외교를 위해 브로치가 쓰이기도 한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200여 개의 브로치를 활용해 ‘브로치 외교’를 펼쳤다. 중동을 방문할 당시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는 식이었다.

브로치는 서양의 패션 아이템이지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사용하고 싶다는 게 간 교수의 바람이다.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의 전통 떨잠이나 뒤꽂이 모양을 본뜬 브로치를 만들어 국제적인 행사에 쓰고 싶어요. 제 디자인과 연구가 더 많은 분야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합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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