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런던서 더 유명한 ‘유돈 초이’ “패션한류 유럽에 전파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최유돈 디자이너 인터뷰

《올해 2월 17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패션위크 기간에 흥미로운 ‘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런던패션위크 공식 일정의 한국 디자이너 무대에 한국 토종 기업의 가방이 함께 올랐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유돈 초이’의 디자이너 최유돈 씨와 한섬의 가방 브랜드 ‘덱케’의 만남이었다.

“쇼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어요. 완성도를 높였다고나 할까요. 저는 그간 가방은 따로 만들지 않았으니까요.”

최근 서울에 온 최 씨를 서울 강남구 덱케 매장에서 만났다. 그가 덱케와 함께 런던패션위크 무대에 올린 가방이 막 전국 매장에서 팔리기 시작하자 서울에 잠시 들른 것이다. 그는 “컬렉션 패션과 어우러진 가방에 대해 현지 바이어들도 관심을 가져 곧바로 주문한 이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K-패션 알리는 플랫폼 된 ‘유돈 초이’


서울 강남구 덱케 매장에서 만난 최유돈 디자이너.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강남구 덱케 매장에서 만난 최유돈 디자이너.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한섬은 2014년 가방 브랜드 덱케를 론칭할 때부터 해외 진출을 꿈꿔왔다. 브랜드 이름을 ‘피부, 가죽’을 뜻하는 독일어 덱케로 지은 것도 유럽 진출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론칭하자 마자 한섬이 운영하는 프랑스 파리 편집매장인 ‘톰 그레이하운드’에 선보이기도 했다.

2017 가을겨울 런던패션위크의 ’유돈 초이’ 컬렉션. 모델이 유돈 초이의 디자이너 최유돈 씨와 한섬 덱케가 함께 만든 가방을 들고 있다. 유돈 초이·한섬 제공
2017 가을겨울 런던패션위크의 ’유돈 초이’ 컬렉션. 모델이 유돈 초이의 디자이너 최유돈 씨와 한섬 덱케가 함께 만든 가방을 들고 있다. 유돈 초이·한섬 제공


파리 편집 매장에서 팔기 시작하니 유럽 바이어들의 판매 문의가 늘었다. 해외 진출에 자신감도 붙었다. 세계 언론과 유통업체에 좀더 멋지게 데뷔하고 싶던 중 런던의 ‘유돈 초이’가 눈에 들어왔다. 엘르, 보그 등 유력 패션 매거진이 극찬한 유돈 초이의 컬렉션은 토종 브랜드로서 세계에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디자이너 최 씨의 무대가 K-패션을 알리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 씨는 2010년 처음으로 세계 4대 컬렉션으로 불리는 런던패션위크에 진출한 뒤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2년 가을겨울 컬렉션부터는 런던패션협회 공식 일정(on schedule)의 컬렉션으로 자리 잡았다. ‘버버리’ ‘멀버리’ ‘크리스토퍼 케인’ 등 쟁쟁한 디자이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2014년 2월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그의 컬렉션을 런던패션위크 ‘10대 핵심 쇼’로 뽑기도 했다. 현재 영국 셀프리지를 포함해 이탈리아, 일본 등 주요국 고급 백화점과 편집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직 성공한 게 아니라는 말과 함께.

“런던패션위크 공식 일정에 이름을 올리기는 너무 까다로운데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에요. 멋지게 등장했다 2, 3 시즌이 지나면 조용히 사라지는 브랜드가 많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늘 긴장합니다.”

“내 안의 목소리 들어야”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 갑자기 떠오르는 직관을 믿습니다. 결국 자신을 믿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브랜드 운영은 5%가 디자인, 95%가 경영 노하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는 자신이 있었다. 굳이 취업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꾸준히 오라는 곳은 많았다. 1999년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석사 마지막 학기에 그의 졸업 작품을 보고 한섬에서 제의가 왔고 곧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런던에 자리 잡은 것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2004년 영국의 명문 왕립예술학교(RCA)로 유학길에 오르면서부터다. 최 씨는 “거창하게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유학을 택했던 게 아니라 친구 따라 지원해 봤던 것”이라며 웃었다. 사실 영국 유학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이었다. 남성복을 정공한 남성복 디자이너였지만 RCA에서는 여성복을 지원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성복을 만들면서 터득한 탄탄한 테일러링을 여성복에 접목하자 여성스러우면서도 구조적 디자인이 빛나는 독특한 스타일이 탄생했다. 그래서일까. 졸업 1년 전에 이미 수석디자이너 자리를 제안받았다. 패션지 엘르 영국의 페이지를 장식한 그의 작품을 보고 영국의 유명 패션업체 ‘올 세인츠’에서 연락해 온 것이다. 파격이 넘치는 런던 패션계에서도 졸업 전의 이방인을 수석디자이너로 고용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2008년에는 배우 시에나 밀러가 만든 ‘트웬티 에이트 트웰브(twenty8twelve)’의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이때 처음으로 런던패션위크의 짜릿한 ‘쇼의 맛’을 느꼈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는 “당시 브랜드의 각 분야가 해외에 흩어져 있어 디자인하고 재단하는 과정을 이끄는 게 쉽지 않았다. 내 방식대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일찍이 두려워했던 ‘브랜드 운영의 95%를 차지하는 경영 업무’는 일단 저지르고 나니 자연히 따라왔다. 그와 함께 일했던 홍보, 영업 에이전시들이 “유돈 초이와 함께하고 싶다”며 합류했다. 구조적이면서 트렌디하고, 독특하면서도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그의 디자인은 곧 입소문이 났다. 창의력과 웨어러블함의 균형을 잘 맞춘 옷으로 통했다. 창업 후 2년 만에 미국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로부터 ‘아름다운 옷’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급기야 런던패션협회로부터 공식 일정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는 “실제 나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운영을 해보니 1%가 디자인, 99%가 경영 업무였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디자인이 주는 파괴력과 독창성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는 디자이너로 통한다.

올해에는 덱케와의 협업을 이어가면서 세계의 다양한 편집매장과 고급 백화점과의 접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가 사라지는 브랜드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최유돈#덱케#가방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