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호 떠난 ‘구호’ 더 키운 18년 지킴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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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패션브랜드 ‘구호’ 김현정 수석디자이너

김현정 수석디자이너는 지금까지 언론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다. 그는 명성 대신 ‘익명성’을 즐겨 왔다. 김 씨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냥 디자인에만 몰두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현정 수석디자이너는 지금까지 언론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다. 그는 명성 대신 ‘익명성’을 즐겨 왔다. 김 씨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냥 디자인에만 몰두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알렉산더 매퀸, 메종 마르지엘라, 캘빈 클라인….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 현재 그 디자이너가 이끌고 있지는 않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을 더욱 진화시키며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여성 브랜드의 하나인 ‘구호’는 정구호 패션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1997년 시작했다. 정 디자이너는 2013년 구호를 떠났다. 위기에 몰렸던 구호지만 현재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가 떠나기 전보다 매출은 2배 정도 늘었고, 지난해 미국 뉴욕까지 진출했다. 국내에서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가 디자이너가 떠난 뒤 살아남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4년 전부터 이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삼성물산 패션부문 구호 디자인실의 김현정 수석디자이너(43). 2000년 구호에 입사해 18년째 이 브랜드와 성장해 왔다. 17일 서울 용산구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정 디자이너가 떠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죠. 10년 넘게 여름에는 비, 겨울에는 눈을 피할 수 있었던 ‘큰 나무’가 사라졌으니까요. 주변에 걱정 어린 시선도 많았죠.”

브랜드 구호의 특징은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디자인의 ‘미니멀리즘’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 불어닥친 미니멀라이프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디자인에서 미니멀을 추구하다 보니 제 삶도 언제부터인가 단순해졌다”라며 “집에 가구 등 갖춘 것은 많지 않다”고 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구호의 올 가을·겨울 프레젠테이션. 삼성물산 제공
최근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구호의 올 가을·겨울 프레젠테이션. 삼성물산 제공
구호는 30대 강남 젊은 엄마들이 많이 입는 옷으로 잘 알려져 왔다. 고객의 충성도도 높아 10년 전 구매했던 고객이 지금도 꾸준히 찾고 있다.

“지금의 고객층도 좋지만 신규 고객을 꾸준히 발굴해서 파이를 키워야만 해요. 20대가 40대가 돼도 라이프스타일만 같고, 체형이 변하지 않는 한 취향은 잘 바뀌지 않거든요. 계속 젊은 고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조금 더 젊고, 여성다운 느낌을 가미하려고 해요.”

올해 봄여름 컬렉션은 아직 매장에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올 가을·겨울 상품 품평회를 열고, 내년 봄·여름 상품 준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시즌을 살고 있다 보니 정신이 없어요. 1, 2년 앞을 내다보며 살아야 하니 가끔은 내가 생각한 방향이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매번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재미는 있어요.”

가장 보람된 순간을 말해 달라고 하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속물적인 디자이너인지 모르겠지만 판매율이 높아 재주문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져요.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연 프레젠테이션 뒤 한 미국 백화점에서 독점 판매 제의를 들었을 때 쾌감이 느껴지더군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여성 패션브랜드#구호#정구호#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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