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알란 쿠르디 비극을 접하고, 이방인의 이야기 그렸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 출간
在佛 만화가 박윤선 씨

자동차 함께 타기, 샤워하고 난 물로 빨래하기, 세제 대신 커피 찌꺼기로 설거지하기. 그가 자연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는 “남편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크게 어려움 없이 작은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박윤선 씨 제공
자동차 함께 타기, 샤워하고 난 물로 빨래하기, 세제 대신 커피 찌꺼기로 설거지하기. 그가 자연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는 “남편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크게 어려움 없이 작은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박윤선 씨 제공
《아이는 세 살 되던 해 터키의 한 해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내전을 피해 소형보트에 몸을 싣고 유럽으로 가던 길이었다. 파도는 아이가 탄 배를 삼켰고 아이의 다섯 살 난 형도 죽었다. ‘알란 쿠르디의 비극’이다.

엎드려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발견된 아이의 주검을 찍은 사진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적셨다.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던 유럽의 나라들도 대책 강구에 나서게 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앙굴렘에 사는 만화가 박윤선 씨(37)는 아이의 사진에 달린 댓글에 충격을 받는다. 아이를 모욕하는 내용이어서다. “‘어마어마한 댓글’이라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그 일을 겪은 후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1일 전화로 만난 박 씨는 2008년 한국을 떠난 후부터 줄곧 프랑스에 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삶을 사는 그가 ‘프랑스 속 이방인’에 관해 그린 만화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사계절)가 지난달 출간됐다. “한국에선 낯선 이방인들이 눈에 안 들어왔는데…. 저 역시 이방인이어서일까요.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박윤선 씨의 만화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의 한 장면. 만화는 박 씨가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계절 제공
만화엔 프랑스에서 그가 만난 다양한 이방인들이 나온다. 자식은 선진국에서 잘살게 하겠다는 의지로 망명을 신청한 아르메니아 청년, 프랑스 거주 자격을 얻기 위해 프랑스 남성과 결혼하려는 북아프리카계 여자, 프랑스-알제리 전쟁 때 프랑스 편에 서 동포들을 학살한 알제리인 할아버지. 사는 곳과 국적이 달라 부침을 겪는 이방인들이다. “‘경계인’으로 사는 사람들이죠. 전쟁 같은 거대한 것들의 피해자들이에요. 국가가 뭐예요? 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는 스스로를 “‘외계인’이자 ‘이방인’이었다”고 고백했다. 서울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는 취업은 마다하고 일러스트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다. “전집에 삽화 넣는 작업을 주로 했어요. 빨리 여러 개를 그려야 했죠. ‘1인 공장’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죠.”

‘좋은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단 생각에 지칠 무렵 그는 ‘작가의 집’(maison des auteurs)이라는 프랑스의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2008년 3월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한국을 떠난 그는 “딱히 잃을 것도 없었기에 쉬이 떠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인 남편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그는 어느덧 10년 차 이방인이다.

“한참 지난 일인데 이상하게 생각이 난다”며 그는 동양인 어린아이와의 에피소드를 에필로그로 그렸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아이를 그저 한참을 바라만 보던 그가 지나칠까 고민하다 “괜찮니?”라고 묻는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네!”라고 대답했다.

“저는 스스로 남한테 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존재로만 여겼던 거예요. 근데 느꼈죠. 아, 나도 이제 남을 도와야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결론은 그거예요. 우리 함께 외국인도 도와주고 어린이도 도와주며 살아요.(웃음)”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박윤선#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알란 쿠르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