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소소한 연애, 한컷 만화에 담겼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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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을 책으로 재구성한 정유미 작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페스티벌서 그랑프리 받은 애니메이션 ‘연애놀이’
“영상의 한계 넘어 실물로 간직되길”

“남자는 종이꽃 접기에 열중하느라 자신이 준 꽃을 귓가에 꽂고 미소 지은 여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세 번째장 ‘종이접기’ 중 한 장면. 컬쳐플랫폼 제공
“남자는 종이꽃 접기에 열중하느라 자신이 준 꽃을 귓가에 꽂고 미소 지은 여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세 번째장 ‘종이접기’ 중 한 장면. 컬쳐플랫폼 제공
정유미 애니메이션 작가
정유미 애니메이션 작가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가공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애니메이션에 사용한 이미지를 묶어 낸 책은 자주 접하기 어렵다. 최근 출간된 애니메이션 작가 정유미 씨(36)의 책 ‘연애놀이’(컬쳐플랫폼)는 후자 쪽이다.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꼽히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페스티벌에서 2013년 그랑프리를 받은 15분 길이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재구성했다.

정 씨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전통 민화와 만화를 좋아했다. 가는 펜으로 그려낸 곰살궂은 디테일과 소박한 고민의 사연이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현재진행형이든 과거형이든 연인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마음이 들 거다. 고향인 부산 작업실에서 전화 인터뷰에 응한 정 씨는 “서로에게 뭐가 왜 서운한지 알지 못한 채 다투다 헤어지고 마는 평범한 연인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금은 남편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와의 연애 경험에서 스토리를 끌어냈다. 우연한 만남과 설렘 뒤에 다들 조금씩 언뜻언뜻 초점이 어긋나는 순간을 맞고, 그런 작은 갈등의 조각을 풀지 못한 채 쌓아가다 보면 야속함을 더 견딜 수 없겠다 싶은 시점이 닥친다. 고비를 겪을 때마다 나 스스로 건강한 관계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돌이키며 그렸다.”

이야기는 통째로 연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과정과 사건의 은유다. 남자와 함께 길을 걷다 돌멩이를 주운 여자가 그 돌로 땅에 사각형을 그린다. 구두를 벗고 사각형 안에 들어가 앉은 여자를 남자가 따른다. 두 사람은 몇 세대 전 아이들의 놀이 프로그램인 소꿉놀이를 재현하듯 돌멩이를 케이크인 양, 모래를 커피인 양 서로에게 건넨다. 종이꽃 접기, 딱밤 치기, 눈 가리고 과자 먹기, 병원놀이, 시체놀이…. 게임을 거듭할수록 두 사람의 움직임은 점점 크게 어긋난다.

“사랑하는 이가 왜 내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더 아프게 할까. 사각형의 관계 안에 머물고 있을 때는 까닭을 알 수 없다.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은 여자는 선 밖으로 나가 구두를 신고 홀로 잠든 남자를 바라본다. 그때 비로소 그가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이기 전에 ‘나와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정 씨가 사각형 밖에 서서 했던 고민과 선택을 지금 함께 살아가는 이는 알고 있을까. 그는 “내 연인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판단을 했으리라는 믿음을 갖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 번 보고 마는 영상의 한계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실물로 간직되고 싶어서 책을 냈다. 타인과의 관계를 다룬 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으로 나와 주변의 삶을 그려 전하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페스티벌#정유미#먼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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