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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총선, 민주주의 원칙 따른 공정성 높은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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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총선, 민주주의 원칙 따른 공정성 높은 선거였다”

조종엽 기자 입력 2018-05-09 03:00수정 2018-05-0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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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외교사학회 학술대회 등… 70주년 맞아 관련 행사 잇따라
1948년 제헌국회의원을 선출하는 5·10총선거 투표장. 이때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보통, 평등, 비밀, 직접 원칙에 따라 선거가 이뤄졌다. 동아일보DB

2020년부터 사용할 중고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삭제돼 논란이 이는 가운데 제헌국회의원을 선출한 1948년 5·10총선거 70주년을 맞아 학술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학술대회 ‘1948년 5·10총선의 역사정치학’을 연다. 학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헌국회선거법의 제정 과정과 선거운영 관리, 각 정치집단의 참여, 선거구 규모와 대표자 선출방식, 소수자배려 여부를 검토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5·10선거가 정통성을 인정받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나 유권자들을 강제로 동원한 비민주적인 선거였다는 주장은 제헌국회의 의의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남한에는) 우익 중도우익 중도좌익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존재했다. 제헌국회의 선거법은 민주주의 원칙에 동의하고 있었으며, 선거제도는 높은 공정성을 갖고 있었다.”

5·10총선은 유권자 대다수가 참여한 정통성을 지녔다는 점도 소개된다. 당시 유권자 877만 명 가운데 805만 명이 등록했고, 그중 90% 이상이 투표했다. 이택선 한국외국어대 외래교수(서울대 박사)는 발표문에서 “북한에서 수립된 정부는 어떤 점에서도 전체 한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법률적, 도덕적 적격성이 없다”며 “대한민국 정부는 자유로운 선거의 산물이자 (남북한 포함) 전체 한국민 3분의 2의 의사를 대표했다”고 밝혔다.

최선 연세대 박사는 제헌 헌법의 경제조항이 자유시장경제와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적절히 조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을 밝힌다. 그는 “광복 후 한국인들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주요 산업의 정부 소유’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 등을 선호했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우익 정당과 정치인 지지가 많았다”고 했다.

유엔총회는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다. 정치외교사학회장인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10선거 당일 국가기관 수백 곳이 습격을 당하는 한편 당시 북제주군에서는 제주도4·3사건으로 선거가 연기되기도 했다”면서도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래 간절히 원했던 국제사회의 승인이 마침내 이뤄진 건 5·10총선을 통해 미흡하나마 주민의 자유 의지가 처음으로 확인된 덕”이라고 말했다.

자유민주국민연합 등도 10일 ‘5·10선거 역사포럼―백성이 국민 된 날’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연다. 5·10선거의 헌정학적 분석(배보윤 변호사), 정치학적 의미(김용직 성신여대 교수), 세계사적 고찰(이주천 원광대 교수) 등이 발표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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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총선거#제헌국회의원#한국정치외교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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