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리학 거두 ‘소재 노수신’이 잊혀진 사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15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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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진도에서 돌아오자 갑자기 선학(禪學)을 해서 퇴계가 크게 놀랐다. 그와 변론할 수가 없어 퇴계가 때때로 시구(詩句)를 통해 자극을 주었지만 소재의 응답 또한 심히 준열했다.”
조선후기 성리학자 택당 이식이 자신의 문집에서 소재 노수신(1515~1590)을 평가한 글이다. 택당은 “도학자들 사이에서 선학을 하는 풍조를 소재가 열었다. 마치 주자 당시에 육상산이 갑자기 출현한 것과 같았다”고도 했다. 육상산은 주자와 학문적으로 대립한 중국 남송시대 유학자로 양명학을 태동시킨 인물이다. 결국 택당은 주자 성리학에서 이단으로 배척한 상산학 혹은 양명학을 소재가 신봉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올해는 소재가 태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소재는 16세기에 활동한 조선시대 대학자로 퇴계 이황, 회재 이언적 등과 교류하며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당파 싸움에 밀려 진도에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키우고 주옥같은 한시를 남겼다. 소재는 당대에는 퇴계나 율곡 못지않은 거학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사상사에서 점차 잊혀졌다.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소재 노수신의 인심도심설에 대한 재해석: 주자학 속에 숨은 양명학’ 논문에서 소재가 조선후기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를 양명학 연구에서 찾았다. 이 논문은 24일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리는 ‘소재 노수신 선생 탄생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소재 노수신 선생 학술문화 진흥회’는 다음달 6일 소재의 고향인 경북 상주시에서 시비 제막식과 강연회를 잇달아 연다.

최 교수에 따르면 택당의 지적처럼 소재는 양명학에 경도된 취향을 문집이 아닌 한시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주자 성리학만 정학(正學)으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이단시 한 조선사회에서 소재가 문집에서 이런 성향을 내놓고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후대 조선 성리학자들이 이를 읽어내고 소재의 학문적 성과를 폄하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소재는 주자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천지만물이 본래 하나임을 깨닫고 주자학의 한계를 넘고 보완하기 위해 양명학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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