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선배 잃어 가슴 먹먹해”…응급의학과 전공의 꿈꾸는 윤한덕 후배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15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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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1998년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제1기 전공의 수료기념으로 당시 응급실(현재 전남권역심장질환센터) 앞에서 찍은 사진. 윤 센터장은 국내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신설된 1994년에 ‘1호 전공의(레지던트)’로 자원해 모교에서 고된 수련을 거쳤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1998년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제1기 전공의 수료기념으로 당시 응급실(현재 전남권역심장질환센터) 앞에서 찍은 사진. 윤 센터장은 국내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신설된 1994년에 ‘1호 전공의(레지던트)’로 자원해 모교에서 고된 수련을 거쳤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50)이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 동구 전남대 의대를 찾았던 2009년 가을의 일이다. 이 교수는 그곳에서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과 마주쳤다. 전남대 의대 출신인 윤 센터장은 바쁜 일정을 쪼개 심포지엄 발표자로서 모교를 방문했다. 윤 센터장은 자기 발표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둘러매고 강당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음은 당시 윤 센터장을 따라나섰던 이 교수가 자신의 책 ‘골든아워’에서 회상한 모습이다.

윤한덕은 망설임 없이 한 강의실로 들어섰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학부 강의실 뒤편이었고, 강의실은 비어 있었다. 그는 교단 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양측에 계단식으로 놓여 있는 책상들을 손으로 가볍게 쓸며 천천히 내려갔다.

―내가 말이야, 여기서 공부했었어.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는 윤한덕의 표정이 어린 학생같이 상기되었다.

―여기서 강의 받을 때는 말이야, 이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서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중략)

오래전 이곳에 앉아 강의를 듣고 밤을 새우던 날들을 더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몰아세우던 윤한덕은 거기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의 뒷모습이었다. (이국종 ‘골든아워’ 1권)


윤 센터장과 함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1호 전공의’로 동문수학한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56)는 “윤 센터장이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일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을 아껴 추억에 잠겼던 그 강의실이 바로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헌신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윤 센터장이 젊은 의학도 시절 배운 것이 응급의료 체계 개선에 투신하는 계기이자 밑거름이 됐다는 얘기다. 윤 센터장은 설 연휴에도 퇴근하지 않고 일하다가 4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자신의 집무실에서 앉은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국종 교수가 “윤한덕 센터장이 책상을 쓰다듬으며 추억에 잠겼다”고 회상한 전남대 의대 본과 4학년 강의실에서 11일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임종백 전공의(왼쪽부터)와 허탁 교수, 한준호 전공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국종 교수가 “윤한덕 센터장이 책상을 쓰다듬으며 추억에 잠겼다”고 회상한 전남대 의대 본과 4학년 강의실에서 11일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임종백 전공의(왼쪽부터)와 허탁 교수, 한준호 전공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1일 기자가 찾은 전남대 의대 본과 4학년 강의실은 이 교수가 묘사한대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계단식 강의실이었다. 이곳에선 윤 센터장의 후배인 전남대 의대 본과 3학년 학생 40여 명이 신민호 예방의학과 교수로부터 감염병 예방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의대생은 겨울방학에도 실습을 위해 학교나 병원에 나온다.

의대생 홍성민 씨(24)는 “윤한덕 선배가 바로 이 강의실에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는 내용을 책에서 읽고 강의실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새로웠는데, 훌륭한 선배를 잃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윤한덕 센터장이 전공의와 임상강사를 거친 전남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모습.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윤한덕 센터장이 전공의와 임상강사를 거친 전남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모습.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의대 건물에서 나와 80m 가량 걸으니 윤 센터장이 전공의와 임상강사(펠로)를 거친 전남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나왔다. 응급실은 이날도 분주했다. 일반 응급환자 병상 41개가 가득 찬 것은 물론이고, 병상을 찾지 못한 환자 15명이 복도의 간이병상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예진실에 앉아 수액을 맞는 환자도 10명 이상이었다. 응급실 밖에선 구급차 6대가 새로운 환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윤 센터장이 근무했던 1990년대 후반엔 응급실의 상황이 이보다 심각했다고 한다. 간이 병상조차 부족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깐 채 환자를 눕혀놓고 돌봐야 했다. 바쁘게 달려가던 의료진이 환자의 다리를 밟는 일까지 종종 벌어졌다. 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를 구분하는 체계도 없었다. 병상에 앉은 채 자장면을 배달 시켜 먹는 경증 환자 옆에서 중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했다. 허 교수는 “그런 지옥 같은 풍경이 윤 센터장을 과로로 내몰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남대병원 응급실 전공의 당직실의 모습. 어지러이 널린 배달음식 쿠폰과 일회용 나무젓가락이 이들의 바쁜 일상을 짐작케 한다. 광주=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전남대병원 응급실 전공의 당직실의 모습. 어지러이 널린 배달음식 쿠폰과 일회용 나무젓가락이 이들의 바쁜 일상을 짐작케 한다. 광주=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응급실 뒤편엔 전공의가 쓰는 당직실이 있었다. 제때 빨지 못해 목 때가 낀 가운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테이블은 먹다 남은 음료수 잔과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어지러웠다. 냉장고엔 배달음식 쿠폰 스티커가 30개 이상 붙어있었다. 2층 침대도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끼니도 잠도 제대로 못 챙기는 전공의의 일상을 짐작케 한다.

윤 센터장의 뒤를 이어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선택한 한준호 씨(32)는 두 눈이 퀭하고 머리가 부스스했다. 한 씨는 수련의(인턴) 때 응급실 실습을 하며 ‘내가 가장 쓰임새 있을 만한 곳은 이곳’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동료 임종백 씨(36)는 응급의료에 헌신한 윤 센터장의 이야기를 접한 뒤 신기하게도 용기를 얻었다. “선배가 저렇게도 사셨는데,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한들 저것보다 고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 씨도 임 씨도 윤 센터장을 만난 적이 없다. 윤 센터장이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지킨다며 후배와의 모임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탁 교수가 전남대 의대 교정 한가운데 느티나무 ‘천년완골’을 가리키고 있다. 윤한덕 센터장은 학창 시절 이 나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허탁 교수가 전남대 의대 교정 한가운데 느티나무 ‘천년완골’을 가리키고 있다. 윤한덕 센터장은 학창 시절 이 나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남대 의대 교정엔 윤 센터장의 추억이 어린 장소가 여럿 있었다. 윤 센터장이 자주 들른 의대 도서관 ‘명학(鳴學)’회관의 이름은 “배움의 소리를 울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 센터장은 공부가 힘들다며 “사실은 ‘울면서 배운다’는 뜻 아니냐”는 농담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가 바라보며 자주 마음을 다지곤 했던 8층 건물 높이의 느티나무 ‘천년완골(千年頑骨·오랫동안 완고하게 기개를 떨쳐 나아가라는 뜻)’도 건재했다. 윤 센터장이 봉사 동아리 ‘Y회’에서 활동한 학생회관 건물도 그대로다.

허 교수는 전남대 의대 교정에 윤 센터장을 기리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센터장의 후배들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공부하고,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것을 배우길 바란다는 것이다. 전남대 의대 동창회(062-220-4019)는 윤 센터장의 유가족을 후원하고 추모사업을 벌이기 위해 추모기념회를 구성했다.

광주=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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