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잊혀진 조선 실학자… 이덕리는 누구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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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정민 지음/436쪽·2만2000원·글항아리

다산 정약용(1762∼1836) 연구의 권위자이자 저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2006년 전남 강진군 백운동의 한 골짜기를 찾아갔다. ‘떡차’와 관련한 다산의 간찰(簡札)을 소장한 한 노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산의 막내 제자 이시헌(1803∼1860)의 5대손인 노인은 “무슨 책인가 몰라” 하며 ‘강심(江心)’이라고 적힌 고서적 한 권을 무심히 내밀었다. 이때의 만남은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실학 저술의 발굴로 이어진다.

책 속에는 ‘기다(記茶)’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돼 있었다. 차(茶)에 대한 세부 내용은 물론이고, 국가 전매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자는 내용이 가득했다. 다성(茶聖)으로 여겨지는 초의선사(1786∼1866)가 쓴 ‘동다송(東茶頌)’에서 ‘동다기(東茶記)’의 일부를 인용했다는 내용과 완벽히 같았다. 동다기의 원전이 바로 기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쓴 이는 누구일까.

힌트는 책 말미에 ‘전의(全義) 이(李)’라는 본관밖에 없었다. 조사 결과 형이었던 이덕사(1721∼1776)가 능지처참을 당하면서 20년 세월을 귀양살이해야만 했던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1725∼1797)였다.

이 책은 ‘상두지(桑土志)’와 동다기 등 18세기 지성사에 획을 그은 이덕리와 관련된 고문헌을 좇는 한 학자의 추적기다. 상두지는 변방의 둔전 경영과 축성 및 도로와 수로 운영, 각종 화포와 수레 제도의 적용을 꼼꼼히 정리한 책이다. 동다기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재원 마련 방법으로 농한기 유휴 인력을 활용한 차 생산과 수출을 내놓았다. 그동안 학계에선 두 책이 다산의 저술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저자의 치밀한 고증으로 200년 만에 주인을 되찾았다.

흥미진진한 남도의 현장과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면모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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