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웃지 못하는 코미디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8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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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요즘 코미디언들이 그렇다. 중견 개그맨 이홍렬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는 없어졌고, ‘개콘(개그콘서트)’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개그맨들의 ‘인기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아! 옛날이여

“갈갈이 패밀리로 활동하던 시기는 개그콘서트의 전성기였어요. 시청률은 40%에 육박했고 마트에서 가로로 잘라 팔던 무를 세로로 잘라 팔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지금까지도 많은 분이 친근하게 대하며 좋아해 주시니 뿌듯합니다. 요즘엔 유튜브, 카카오톡 등 웃음을 공유할 창구가 많고 대중의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어요. 웬만한 내용으로는 웃기기가 힘드니 더 강렬하고, 빠르고, 간결해야 해요. 개그맨들이 더욱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개그맨 박준형

“예전에는 개그맨들이 모든 관객을 웃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대중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코미디나 코미디언을 찾아 나섭니다. 자신의 웃음 코드,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볼거리를 선택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죠. 젊은 코미디언들도 TV라는 매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대를 만들면서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어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시골에 작은 극장을 만들고 공연을 시작할 겁니다. 공연을 직접 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코미디를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것이 아직까지도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개그맨 전유성·전 철가방 극단 대표

“대본을 숙달하고 수차례 연습을 거친 뒤에 무대를 올리는 공개 코미디는 지금의 문화 코드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트렌드는 가수, 탤런트, 스포츠 선수 같은 ‘셀럽’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에요. 대중이 자연스러운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웃음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죠. 코미디 프로그램이 새로운 형식, 코드, 포맷을 찾아야할 시점입니다.” -이동규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교수·전 SBS ‘웃찾사’ PD

● “코미디는 내 운명”

“비 오는 날 교실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였어요. 잠 깨러 세수한다고 나가서는 운동장에서 ‘선생님, 저 지금 세수하고 있어요’하고 소리쳤죠.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창문으로 몰려들어 저를 보며 웃었어요. 그렇게 코미디를 시작했고 지금은 극단에서 개그쇼와 개그 연극을 하고 있어요. 소규모 공연이지만 관객이 보내준 박수 소리와 눈빛은 늘 감동을 줍니다.” -유영우 씨(23·극단 배우)

“제 첫 공연은 ‘흑역사’였습니다. 공연을 시작하고 10분 동안 아무도 웃지 않았어요. 4번째 공연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웃게 했는데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돈이야 어떤 일이든 해서 벌면 되지만 코미디를 하면서 얻는 보람과 성취감은 어떤 거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공을 하든 안하든 코미디 공연은 계속할 겁니다.” -김인한 씨(31·스탠드업 코미디언)
“KBS 개그맨 출신 멤버들이 모여 ‘쇼그맨’이라는 공연을 하고 있어요. 미국과 호주, 중국 등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이어왔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현지 교민이라서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문화 혜택이 많이 없는 군이나 리(里)에서도 공연을 해요. 어디든지 관객을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코미디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게 됩니다.” -정범균 코미디언

● 그래도 코미디를 꿈꾸는 사람들

“서울예술대학교 개그동아리 ‘개그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동엽, 이영자, 송은이 등 많은 스타 선배들이 거쳐 간 전통 있는 동아리예요. 이번 여름방학에는 매일 아침 11시부터 새벽 4~5시까지 하루에 40개가 넘는 대본을 짜고 연기 연습을 했죠. 저는 올해 KBS 코미디언 시험에 도전했는데 아쉽게도 2차에서 불합격을 했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듯이 저도 기회가 올 때까지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을 거예요.” -김민석 씨(22·서울예대 방송영상과)

“코미디언 지망생들이 실력을 펼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저는 3년 동안 공채 시험을 딱 두 번 볼 수 있었어요. 지망생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나 돌잔치 같은 행사 진행을 병행하면서 ‘투잡’을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미디를 향한 열정이 무엇보다도 커요. 동기들과 모이면 웃음 포인트를 살릴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오기가 생겨 서로 경쟁하기도 합니다.” -양승희 씨(27·코미디언 지망생)

“개그를 짜는 것부터 무대 위에서 연기하기까지 모든 걸 책임지는 개그맨들은 싱어송라이터 같은 아티스트입니다. 특히 개그는 일회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생산해내야 해요. 운 역시 크게 작용하는 개그계는 결국엔 ‘버티는’ 싸움입니다. 10년의 지망생 생활 끝에 개그맨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프로가 되어도 대중의 주목이나 인정을 받지 못할 수 있고요. 꾸준히 방송에 나오는 것만으로 대단한 겁니다.” -최승태 GK개그아카데미 원장

● 해외로… 새 무대를 찾아

“KBS 공채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스탠드업 코미디가 발달한 스페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이곳에서는 피부 색깔이 다른 것도, 언어를 못 하는 것도 저의 캐릭터가 됩니다. 언어와 문화는 공부하면 되는데 웃음 코드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아요. 비자나 생활비 등 상황이 녹록치는 않지만 제가 출연하게 된 스페인 오디션 프로그램 ‘갓 탤런트’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예요.” -코미디언 김병선(31)

“KBS와 SBS, 대학교에서 활동하던 개그맨 4명이 모여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을 꾸렸습니다. 첫 무대는 홍대 술집이었어요. 큰 무대에서 공연하다가 20~30명 앞에 혼자 서서 이야기를 하니 오손도손 안락한 느낌이 들었죠. 방송은 다룰 수 있는 소재의 폭이 좁아 어려움이 많지만 주 관객층이 20, 30대인 이곳에서는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각자 1시간짜리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을 만들어서 넷플릭스에 작품을 올리고 싶어요.” -정재형 코미디얼라이브 대표

“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한국의 30대 여성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흥미롭게 혹은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르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게 핵심이죠. 저는 서른네 살에 코미디를 시작했어요. 저 같은 여성분들이 더 많이 무대에 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코미디언 최정윤·‘스탠드업나우뉴욕’ 저자

● 시청자도 한 마디 할게요

“어렸을 때 보던 개그에서 상대 외모를 비하하거나 몸으로만 웃기는 걸 자주 봤어요. 뚱뚱한 개그맨들이 뱃살로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요. 웃음이 나기보다는 ‘아프겠다’는 생각에 눈살만 찌푸려지더라고요. 친구와 자취를 시작한 뒤로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인터넷 매체에서 저의 유머 코드에 맞는 콘텐츠들을 직접 찾아봅니다.” -배하진 씨(22·대학생)

“우리 집에서 막내딸이 유일하게 개그콘서트를 봐요. 딸의 장래 희망 중 하나가 개그우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개그콘서트가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거예요. 요즘은 어린 아이들이 많이 보는데 왜 시청 연령이 높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막내딸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입장을 못 해서 크게 실망할 것 같아요.” -정지훈 씨(41·자영업)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서재의 인턴기자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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