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1〉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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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꽃이 핀 물건방조어부림.
이팝꽃이 핀 물건방조어부림.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신성성이 살아 있는 숲이 있다. 제방이 가로막기 전, 숲과 해안은 맞닿아 있었다. 봄의 기운을 받아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해안가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깊은 그늘은 물고기를 해안가로 불러 모았고,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하늘로 치솟은 숲은 바람과 파도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는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

400여 년 전, 경남 남해 물건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해변에 나무를 심었다. 취락과 농경지가 바다와 접해 있어 태풍이 불면 극심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숲을 만들어 자연재해를 막으려 했다.

그로부터 400년이 흐른 지금, 후손들은 이 숲이 들려주는 언어를 이해한다. “숲에서 이팝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면 멸치가 몰려오고, 며칠 지나서 꽃이 무성하면 방어가 몰려옵니다.” 물건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의 그늘에 앉아서 쉬는 노인의 설명이다. 해변을 반월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무성한 숲에는 이팝나무, 팽나무, 참느릅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포구나무 등의 활엽수가 밀림을 이룬다. 상층목 2000여 그루와 하층목 8000여 그루로 이루어진 물건방조어부림은 그 흔한 소나무 한 그루 없는 활엽수림이다.

200여 년 전, 주민들이 해안 숲의 나무를 베자 마을에 큰 화재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후로 이 숲을 파괴하면 마을에 변고가 일어난다는 믿음이 생겼다. 100여 년 전, 숲에 대한 두려움이 약해졌는지 사람들이 벌채를 한 일이 있었다. 그 후에 폭풍우가 들이쳐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숲의 노여움 때문이라 생각한 주민들은 숲의 훼손을 철저히 금했다.

싱그러움이 한창 자태를 뽐내던 어느 해 5월, 나는 여느 날처럼 물건방조어부림을 거닐다가 멋진 통나무를 발견했다. 남해군청에서 숲 관리를 위해 죽은 나무를 베어 쌓아 둔 곳의 통나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경용으로 좋을 것 같아서 숙소 마당으로 옮겨 두었다. 이를 본 주민이 깜짝 놀라며 다시 숲으로 가져다 둘 것을 권했다. 비록 죽은 나무지만 신성시하는 숲의 일부를 외부로 가져가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것. 이 일화를 통해서 물건방조어부림이 수백 년 동안 잘 보전될 수 있었던 이유를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숲에 대한 경외심이 보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숲의 신성화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으로 이어졌다.

필자는 물건마을에서 두 번의 태풍을 맞았다. 방조어부림 안쪽에 자리 잡은 주택가에서는 바람이 조금 세게 부는 정도였지만, 방조어부림 앞쪽 해변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었고, 파도는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선박을 침몰시켰다. 방조어부림은 두 팔 벌려서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내고 있었다. 순간 나도 숲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생겼다.

주민들은 해안 숲이 회복력을 상실했을 때 자연의 무서운 역습이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방조어부림과 주민들의 공존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기에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건방조어부림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숲의 정령이 깃들기를.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남해#물건마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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