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우당탕탕]〈6〉아는 얼굴인데 모르는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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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가로수길 카페에서 실수한 적이 있다. 아는 얼굴이 있어 인사했는데, 상대방은 모른 척했다. 다시 손을 흔들며 “오랜만이야”라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도 모른 척했다. ‘왜 그러지? 알은척하면 안 되는 상황인가?’ 한참 후, 나가는 척하면서 그 사람을 천천히 뜯어봤는데,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가로수길에 가면 이런 일을 종종 겪는다.

시즌마다 유행하는 성형수술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같은 병원에서 수술한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이마도 비슷하게 생겼고, 코도 비슷하게 생겼고, 눈도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비슷한 헤어스타일! 분명 얼굴은 아는 얼굴인데 모르는 사람이라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면서도 비슷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댓글 달아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이라 친하게 느껴지는 사람인데,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뭐,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다 한 번은 마주치겠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문이 열리더니 그분이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네? 아…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네.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가신 냉면집 저도 자주 가는 집인데….”

“지난주? 아… 네. 거기 맛있….”

땡!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우리는 어색하게 헤어졌다. SNS에서는 서로 댓글을 달아주고 좋아요도 팍팍 눌러주는 사이였는데 실제로 만나니까 왜 어색한 걸까.

한 번은 SNS에서 쪽지가 왔는데 평소에 방송을 잘 듣고 있다며 커피 원두를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모르는 이에게 그냥 받을 수는 없고, 돈 주고 사겠다고 했더니 50% 할인해주겠다고 했다. 그것까지 거절하면 상대방이 서운해할 것 같아서 원두를 주문했다. 그런데 원두를 다 먹기도 전에 그분이 또 쪽지를 보내왔다.

“원두 다 드셨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새로운 원두 드셔보세요.”

가격을 보니 비싸도 너무 비쌌다. 평소 단골가게에서 100g에 5000원 하는 원두를 사는 편인데 이분이 추천한 원두는 100g에 4만 원이 넘었다. 계속 쪽지를 보내길래, 미안하지만 친구를 끊었다. 그러다 얼마 전, 연남동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인사를 했다.

“혹시 이재국 님 되시죠?”

“네? 아 네.”

“원두 보내드린 사람입니다. 왜 저랑 친구 끊으셨어요?”

“….”

아, 이 SNS 때문에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혼나야 하나.

요즘 어떤 사람들은 실제 만나는 사람보다 SNS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 만나면 감정 소비도 해야 하는데 SNS에서 만난 사람과는 그럴 필요가 없고, 서로 좋은 이야기만 해주면 되니까. 사실, 때론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면서 더 돈독해지는 건데, SNS에서는 이런 돈독함이 없다. SNS의 딜레마.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sns#감정 소비#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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