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앗, 화가 아저씨 찾아온 말하는 너구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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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밭 너구리/유승희 글·윤봉선 그림/239쪽·1만1000원/책읽는곰

산골에 혼자 사는 화가 아저씨에게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너구리입니다. 다짜고짜 참깨 수확은 언제 할 거냐고 묻습니다.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얼결에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라며 너구리는 돌아갑니다. 꿈이었을까요? 너구리가 말을 하다니.

너구리의 방문은 허세와 어리광의 연속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지구의 수명을 연구하는 중이라며 알 수 없는 수식으로 듣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더니, ‘하필이면’ 간식시간에만 찾아와 망설이지도 않고 간식을 먹고 가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우주 전체의 흐름을 읽는 것 같은 너구리의 너스레를 듣다 보면, 꽤 그럴듯합니다. 지구와 생명에 대해서는 전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와 너구리는 서로를 조금씩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너구리는 단지 ‘유해 조수’일 뿐입니다. 결국 너구리는 올무에 걸려 죽게 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너구리의 너스레가 이어집니다. 우주는 1000억 년 동안 끄덕 없으니 인간들은 안심하고 살아도 된답니다. 확인할 수도 없는 걸, 녀석! 하지만 묘하게 안심됩니다.

작가는 마치 이야기 속 너구리처럼 불쑥 우리에게 첫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짜고짜 135억 년 전의 시간과 1000억 년 이후의 시간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시각으로만 보았던 시간을 자연의 시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마치 인간이 우주의 주인인 양 행동했던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관도 엿보입니다.

천재 물리학자와 유해 조수 사이를 오가는 너구리의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구성이 끝까지 독자들을 긴장하게 합니다. 인간은 정말 똑똑할까요? 너구리보다 더?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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