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9년째 ‘에바’에 빠져있거나… 아직도 난해하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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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오디세이/이길용 지음/448쪽·1만6000원·책밭

에반게리온은 서정적인 시리즈 소제목을 통해 기존 로봇 애니메이션과 확실한 경계선을 그었다. TV에서 처음 방영된 지 19년이 지났지만 팬덤의 열기는 여전하다. 동아일보DB
에반게리온은 서정적인 시리즈 소제목을 통해 기존 로봇 애니메이션과 확실한 경계선을 그었다. TV에서 처음 방영된 지 19년이 지났지만 팬덤의 열기는 여전하다. 동아일보DB
1980년대 후반 청소년기를 거친 남성이라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TV가 아닌 소설로 먼저 접한 기억이 있을 거다. 일본 대중문화 상품 유통이 불법이었던 시절, 대형서점에 버젓이 진열된 해적판 ‘기동전사 Z건담’ 소설은 10대 남자아이들에게 짜릿한 횡재였다.

이 책은 Z건담이 나오고 10년 뒤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텍스트로 전한다. 하지만 스틸 사진을 드문드문 삽입하며 스토리를 죽 풀어 쓴 18년 전 소설과는 다르다. 서문에 밝혔듯 해설서도 아니다. 에반게리온(에바) 팬덤은 다른 어떤 애니메이션에 뒤지지 않을 만큼 폭넓고 단단하다. 작품 속 상징적 요소에 대한 분석 자료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지은이는 어린 시절 과학자를 꿈꾼 적이 있는 종교학자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2000년 TV로 에바를 처음 본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 7편의 비평을 올렸다. 14년 전 쓴 그 글이 책의 뼈대다. 태평천국과 동학을 비교하는 논문을 준비하던 저자는 이 오묘한 애니메이션에 녹아 있는 종교적 요소의 통시적 규명을 시도했다. 헬라어(고대 그리스어)에서 가져온 ‘에반게리온(evangelion)’은 ‘복음’을 뜻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비자의 적극적인 헤집기와 살붙이기가 대중문화 상품의 중요한 흥행 동력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적 호승심을 자극하는 신화적 암호와 상징을 품지 않은 콘텐츠는 드물어졌다. 슬라보예 지젝과 17명의 철학자가 정색하고 써낸 ‘매트릭스로 철학하기’(2002년) 이후 히트작의 인문학적 재구성도 차츰 식상해졌다.

만약 글쓴이가 지젝처럼 웃음기 하나 없는 문장을 이어냈다면 읽어 나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은 취향에 따라 재미보다 짜증을 유발시킬 수도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에바는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인물 심리극이다. 하나같이 지독한 콤플렉스 덩어리인 등장인물들이 대의 따위 아랑곳 않고 저마다의 결핍과 욕망에 얽매여 폭주한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거대병기를 만들어 친아들을 전쟁터로 내몬 목적은 오직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대개 이런 식이다.

만화다운 한계를 “꼼수로 일관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저자는 오타쿠(마니아) 혐의를 벗는다. 애니메이션이 시청률을 위해 폭파 장면에서 여주인공의 각선미를 클로즈업했듯, 흥미로운 주요 용어와 등장인물 개요 설명을 전반부에 실었다. 에반게리온 새 극장판 시리즈의 완결편을 기다리는 팬에게만 흥미로울 읽을거리는 아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에바 오디세이#신세기 에반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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