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민호]카네이션이 무슨 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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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스승의 날, 담임 선생님께 반 애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서 케이크를 사드리려 하는데 이거 김영란법에 걸리나요?’

인터넷 포털에 ‘스승의 날’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쉽게 볼 수 있는 질문이다. 당초 법 시행을 앞두고 국민권익위원회는 스승의 날에 선생님이 학생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는 것 또한 청탁금지법의 금품 수수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올 1월 카네이션과 꽃은 사회 상규에 따라 허용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다만 ‘학생 대표 등’이 ‘공개적’으로 교사에게 주는 꽃으로 한정했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7개월 정도 지났다. 그동안 법 시행에 따른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 관행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금품 수수와 청탁이 이제는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국민의식의 전환은 매우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다. 권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끼리 또는 특정 학교 출신끼리 서로 챙기고 봐주는 청탁 문화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런데 ‘도덕’의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보완해야 할 문제점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학생이 담임 선생님께 개별적으로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드린다고 해서 그것을 ‘뇌물’이나 ‘청탁’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의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법 위반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법 적용 대상자는 직무관련성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단 한 푼의 금품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 대표가 공개적으로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드리는 것은 허용된다는 것도 권익위의 해석일 뿐 법 규정이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탁금지법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면, 일단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어떠한 금품도 받을 수 없고, 직무관련성이 없으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현재는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 10만 원 이하)까지만 금품 수수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 나라는 상당히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교사와 언론인까지 모두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또 대부분의 나라가 직무관련성 유무와 관계없이 공직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금품의 허용 범위를 정하고는 있으나 우리처럼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어떠한 금품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선물 등의 금액 기준은 1회에 20달러, 연간으로는 50달러이다. 이처럼 미국의 공직자는 직무관련성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20달러 정도의 음료수나 꽃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20달러짜리 선물 때문에 공직자가 불공정한 업무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도록 법을 설계하다 보니 미풍양속에 따른 마음의 선물도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이다.

김영란법은 2011년부터 제정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당시 물가 수준에 맞춰 이른바 ‘3, 5, 10’ 기준이 설정되었으니 7년이나 지난 지금에는 물가 수준의 변화에 따라 그 기준도 변경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관행적 부패와 부정 청탁의 악습을 일격에 타파하는 데 크게 기여한 청탁금지법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력한 집행력을 가지려면 다소 현실적이지 못하고 무리가 있어 보이는 사항을 적극 보완해야 한다.

한 송이 카네이션이 청탁금지법의 근본정신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농림축산업자나 소상공인의 숨통을 열어 주고 최소한의 미풍양속은 보존될 수 있도록 법이 보완되기를 기대한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영란법#스승의 날#카네이션#청탁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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