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개헌을 위한 몇 가지 기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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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대 국회의 개원과 더불어 개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하던 원포인트 개헌이 정당 대표들과의 약속에 따라 제18대 국회로 미뤄진 이래 개헌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숙제였다.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범위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기 때문에 개헌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헌의 필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평균수명이 5년에도 미치지 못하던 과거 헌법들에 비해 현행 헌법은 근 30년에 이르는 압도적인 최장수 헌법이지만, 그로 인해 현실과 맞지 않게 된 부분도 적지 않다. 또한 대통령의 임기 문제나 권력구조 문제 이외에도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해서도 손보아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예컨대 3공화국 당시 위헌으로 결정되었던 것을 유신헌법에서 헌법 규정으로 만들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제한에 관한 제29조 제2항의 문제는 반드시 손질해야 할 조항이며, 그 밖에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정보 인권 조항의 필요성, 글로벌 시대에 맞는 외국인의 인권 보장 등 인권 보장의 현실화와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물론 개헌의 중심 화두는 여전히 국가조직일 것이다. 특히 대통령제를 유지할 것인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편할 것인지에 따라 헌법 질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각각의 주장이 그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있으나, 향후 개헌의 준비 과정에서는 몇 가지 기준이 먼저 설정될 필요가 있다.

첫째, 30년 만의 개헌이기 때문에 차후에도 30년이 지나야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세대에 한 번 있는 개헌이므로 이 기회에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바꾼다는 생각보다는 합의가 가능한 것, 개헌이 꼭 필요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바꾸도록 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차기 개헌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이념적 갈등이 극심한 사항은 개헌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컨대 보수와 진보 사이에 갈등이 첨예한 영토 조항 문제나 경제 조항 문제를 개헌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에는 여타 조항들에 대한 합의조차 흔들리게 될 우려가 크다.

셋째, 개헌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엄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대비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지만, 권력구조의 개편은―비록 전자와 무관하지 않지만―후자에 해당한다. 전자는 중장기 과제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당장의 성공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이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은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에 유리할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 우리도 통일헌법의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그 성공 조건, 즉 국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뢰, 정당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개헌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그러나 개헌을 통해 동상이몽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개헌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려 들면, 지난해 말에 선거구 재획정 시한을 앞두고 여야가 서로 다른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던 경우처럼, 개헌이 지연되면서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기게 될 수 있다. 개헌은 개헌의 본질에 맞게 진행되어야 하며,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가운데 헌법의 이념과 원리가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개헌#20대 국회#개헌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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