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재]이세돌의 값진 도전과 인식의 대전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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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올해 2월 부산의 시내버스에서 한 간호사는 60대 남성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성의 가슴 쪽을 몇 초간 살펴본 간호사는 남성의 흉곽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곧바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심정지 상태였던 남성은 간호사 덕에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대부분의 승객은 이 남성이 졸고 있는 줄 알았지만 간호사는 예리한 직감으로 남성을 살린 것이다. 인지과학자인 게리 클라인은 아주 미세한 차이를 파악할 수 있는 게 전문가의 능력이며 이를 전문가적 직관력이라고 정의했다. 만일 심장질환이 있는 모든 환자가 이런 노련한 간호사를 개인 간호사로 둘 수 있다면?

알파고는 과거 체스 챔피언을 이긴 IBM의 딥블루와 달리 인간의 인지능력 및 직관력을 모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기계학습으로 과거 바둑기사들이 둔 기보를 학습하여 프로기사의 직관을 파악했고 자가 학습을 통해 최적의 의사결정 방식을 찾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직관력은 컴퓨터로는 구현될 수 없는 능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간의 직관력도 이제 컴퓨터의 도전을 받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정보의 부재, 둘째는 정보처리를 통한 의사결정의 복잡성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정보기술(IT) 혁명은 정보의 부재를 해결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이런 문제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21세기의 기술은 복잡한 정보를 분석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고 인간의 직관력과 같은 능력을 학습하여 인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딥마인드도 인공지능 기술을 기후변화와 헬스케어 사업 등에 접목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의사, 변호사, 회계사와 같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직업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매트릭스’와 같이 인간과 기계가 실제 대결하는 암울한 미래를 정말로 걱정해야 할까. 이에 대해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앤드루 매카피는 대결이 아닌 공생이란 대안을 제시했다. 미래 세계에서 인간의 복잡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가 창조될 수 있다. 새로운 가정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란 인류 역사의 새로운 가정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부산 시내버스에서 60대 남성은 지병으로 인한 심정지란 응급 상황을 겪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심박수를 측정하는 휴대장비는 이미 개발돼 있다. 이러한 장비가 데이터 인프라와 결합해 수만 명의 심박수를 측정하고 기계학습을 통해 개인의 심박 특성을 파악한다면 개인화된 인공지능 장비로 진화할 수 있다. 60대 남성을 구한 간호사의 예리한 직관이 인공지능으로 탄생돼 그것을 개개인이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인공지능 관련 연구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알파고보다 더 게임을 잘하는 컴퓨터만은 아닐 것이다. 심박 측정 장비가 인공지능 장비로 진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단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만은 아니다.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열린 마인드, 그리고 인프라 및 규제 혁신이 더욱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비록 이세돌은 초반 3판을 알파고에 졌지만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이 중요한 시기에 개념 전환의 필요성을 강렬하게 전달했다. 그의 도전이 값지고 의미 있는 이유다.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이세돌#알파고#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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