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창길]명품 정책의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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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길 세종대 사회과학대학장 행정학과 교수
이창길 세종대 사회과학대학장 행정학과 교수
지난주 동아일보에 ‘2015 대한민국 정책 평가’와 ‘장관 평가’ 결과가 실렸다. 정부 중요 정책 40개를 대상으로 한 정책 평가 결과를 보면, 정책 목표의 명확성이나 사회 현안 반영 정도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정책의 만족도와 효과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다시 말하면 정책 목표는 좋으나 정책 성과는 미흡하다는 평가이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부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우리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34.0%에 불과하다. 즉 10명에 7명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41.8%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결과는 근본적으로 정책 과정을 경시하는 정부의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정책 목표가 명확하고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정책 성과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소통과 참여를 통한 합의 과정이 없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과거와는 달리 정책 과정의 성공적인 운영 없이는 소기의 정책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예를 들면 정부가 현재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노동, 교육, 공공개혁 등과 관련한 정책들이 하위권으로 평가된 것은 정책 과정 실패의 결과로 해석된다. 정책 투명성의 평가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 또한 이를 말해준다.

이러한 정책 과정의 실패는 21개 부처를 대상으로 한 장관 평가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높은 평가를 받은 장관들은 대부분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소통하고 설득하는 모습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반면에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대체로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물론 전문성을 갖추고 있더라도 다양한 이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소홀했던 전문가 출신 장관들도 하위권을 형성했다.

또 정책 담당 공무원들이 정책 과정을 경시하는 행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흡’한 점수를 받고도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부의 반발이 있더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다”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태도는 ‘낮은 평가’에 대한 겸손하고 진지한 성찰이 부족함은 물론이고 ‘일부의 반발’이라고 하면서 해당 정책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피해를 입어야 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폄하하고 축소한다. 급기야는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못을 박아버림으로써 정책 논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책 과정의 누락과 경시는 계층적이고 권위적인 과거형 공직문화와 결합돼 총체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책 평가와 장관 평가, 그리고 이에 대한 부처 반응 모두가 그렇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명분과 논리도 부족하고 적극적인 설득과 합의의 과정도 없이 정책 추진에 대한 단호한 의지만을 앞세운다. ‘나를 따르라’는 구시대적 일방적 명령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명품 정책’을 보고 싶다. 화려하게 치장된 목표, 형식화된 과정과 절차, 그리고 실속 없는 성과는 무의미하다. 국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하고 만족하는 건강한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진지한 참여와 토론, 그리고 합의 도출은 명품 정책을 만들어갈 필수요건이 아닐 수 없다. 일반 시민들이 정책 과정에 참여해 심의하는 ‘정책토론의 날(Deliberation day)’을 국가공휴일로 제정하자는 미국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슈킨 교수와 예일대 브루스 애커먼 교수의 제안도 새겨볼 일이다.

명품 정책을 위해서는 장관과 공무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장관 선정 기준도 크게 달라져야 한다. 현안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과 함께 소통하고 설득해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내년 평가에서는 명품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건강한 정부로 판정받기를 기대한다.

이창길 세종대 사회과학대학장 행정학과 교수
#명품#정책#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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