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산가족 상봉을 보며 절감하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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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소설가
이호철 소설가
나는 대표적인 남북 이산가족 중의 한 사람이어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지역 첫 상봉 때 적십자사 자문위원이라는 자격으로 평양으로 들어가 2박 3일간 50년 만에 북의 누이동생과 만났었고 그때도 그 상봉 행사에서 벌어졌던 그 요란한 ‘이벤트성’에 일말의 거부감을 느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행사를 보면서도 ‘저건 아니다’ 싶었고 차라리 처음부터 현 휴전선에 대여섯 군데 ‘남북 면회소 설치’ 쪽으로, 그 한 가지로만 집중해서 전심(專心)을 했더라면 그렇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간에 우여곡절은 물론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남북 관계에서 볼 만한 진전(進展)은 있었지 않았을까도 싶은 것이다.

이번 제20차 ‘1, 2회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도 그렇다.

결혼 7개월 만에 헤어졌던 80대 늙은 부부가 65년 만에 금강산의 그 상봉 현장에서 2박 3일간 만나는 그 극적인 장면을 화면으로 보면서도, 나는 속이 불끈해지며 우선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도대체 저 모습이 오늘의 지구촌 여러 나라의 구석구석에까지 속속들이 비쳐져서 우리네가 얻을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일단 그 모습을 보는 온 세계 사람들도 충격을 받을 것이다. 저 지경인가, 한반도의 남북 분단의 실제 모습이 저 지경이라는 말인가. 실로 놀랍다! 놀라워!!!

그렇다면…, 하고 그이들은 그 다음, 응당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양쪽, 남과 북의 두 정부라는 것은, 저들 백성이 저 지경이 되도록 그냥, 나 몰라라, 하고 내버려 두었었다는 말인가. 어찌 저럴 수가 있더라는 말인가, 도대체 저 나라 남북의 정치라는 것이.

어떤가. 그간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라는 것을 주관(主管)해온 기관은 그 행사의 ‘이벤트성’만을 고려하였지, 속 알맹이, 우리가 실제로 얻어낼 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캄캄, 나, 몰라라, 였던 것이다.

우리가 통일된 독일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1987년 서독 쪽의 한 여론조사 결과는 78%의 응답자가 동서독의 통일은 바라지만, 자기가 사는 당대에 직접 통일을 보리라고 응답한 사람은 불과 9%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 3년 뒤인 1990년 10월 3일에 동서독 통일은 마치 하늘에서 벼락 떨어지듯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는, 1970년대부터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빌리 브란트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숨은 끈질긴 노력이 자리해 있었다. 예를 들어 그 당시의 소련의 우두머리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은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보다 서독의 정치인 브란트와 더 가까웠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물론이고 공화당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이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도 브란트라는 사람과 무척 친근했었다고 한다.

그건 바로 브란트라는 사람의,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은밀한 공들임, 깊은 정치적 능력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독일 통일이라는 것은, 그 저변에 30년 동안의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은 집요하고도 깊은 정치적 노력의 결과로 1980년대 말에 들어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결단까지 이뤄냈던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이에 비한다면, 흔해 빠진 이벤트성 행사 위주의 천박한 행태들의 엄청난 해독을 다시 이 자리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2015년의 우리네 정치는 과연 어느 근처를 맴돌고 있는가. 작금의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미국 방문도 그러저러하게 이야기도 돌고 있는데 우리네 남북 정치도 왕년의 독일 정치인들의 그 깊디깊은 지혜에서 얻어낼 것이 있지 않겠는지….

이호철 소설가
#이산가족#상봉#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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