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진]등불이 세상을 환히 밝히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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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 청주 마야사 주지
현진 청주 마야사 주지
5월의 눈부신 신록 때문에 일과의 절반을 나무 아래에서 소일하는 것으로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저께 아침에는 꽃나무 모종을 옮겨 심는 일로 분주했다. 옆 마을 불자가 여린 백일홍과 해바라기를 갖다 주어서 새로 만든 화단에 심었고, 뒤이어 꽃시장에서 구입해 온 패랭이를 돌 틈 사이마다 자리를 잡아 두었다. 지금은 풀 죽은 듯 시들시들하지만 며칠 더 지나면 뿌리를 내리고 본래의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이런 과정들과 마주하면서 꽃 가꾸고 김매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잔잔한 기쁨이 스며든다.

우리 삶에서 꽃과 나무가 없으면 참 팍팍한, 물기 없는 일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꽃과 나무가 삶의 아픔을 위로해주고 소소한 인생의 기쁨을 선물하는 부분은 많다. 이를테면 고통과 상처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받고 치유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마음이 어둡거나 아픈 이들은 사찰이나 교회를 찾지 말고 꽃들이 전하는 법문을 먼저 듣는 것이 훨씬 이성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 종교의 교리나 가르침 이전에 자연의 섭리에서 배우는 교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불두화(佛頭花)와 함박꽃이 활짝 피어서 그 옆을 자주 서성이다가 방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5월의 꽃들은 연등과 형형색색 어우러져서 사월 초파일 봉축 분위기와 일품을 이루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이면 꽃이 다 지고 없을까 걱정했는데 연못 주변의 붓꽃과 창포가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연등이 아무리 법당을 거룩하게 장식한다 하여도 정원에 꽃이 없다면 축제의 의미가 반감되고 만다.

이렇게 꽃과 나무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것은 생명에 눈길을 주지 않고서는 불탄일을 수없이 맞이하여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자비는 생명에 대한 관심과 감사에서 비롯되며, 그 마음이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평화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종교를 섬기든 자비와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성공, 출세, 사랑, 건강, 여행 등 자신의 소원들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할 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비심이 근원이 될 때 생의 행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자애로운 마음을 외면하면 행복의 조건을 재산과 명예에만 그 가치를 두기 마련이다. 도전과 모험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그것에는 경쟁과 좌절이 동반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설령 성공적인 삶일지라도 그런 일의 목표는 계속해서 욕망으로 확대 생산될 수 있다. 즉,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돈과 권력 이외에도 행복의 요소들이 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불행하지 않다. 이 평범한 행복의 공식을 잊고 살기 때문에 그것을 재차 일러주기 위해 도솔천의 그분이 해마다 이 땅에 오시는 것이라 믿고 싶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자제(自制)와 배려의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앞서겠다고 다투는 경쟁의 결과는 상호 간에 자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사람다운 삶을 이루려면 반목과 투쟁에서 깨어나 보다 기본적인 사고(思考) 위에 서야 한다. 우주적 질서와 삶의 순리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인데 무슨 거창한 곳에서 찾으려고 하니까 항상 문제다. 꽃을 가꾸고 나무를 심듯이 우리가 가슴을 활짝 열어 놓아야 신(神)이 비로소 들어올 수 있다. 그런 신을 모시고 있는 한 어리석은 생각이나 악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신념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 안의 자비와 사랑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진정한 신이며 부처라는 사실을 알아야 오늘의 등불공양이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 될 것이다. 부처님 오심을 봉축한다.

현진 청주 마야사 주지
#등불#세상#불두화#불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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