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재희]안전 규제는 더 강화해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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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최근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4명이 숨지고 120여 명이 다쳤다.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는 이른바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건축법상 비상출구를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고 방염 처리가 안 된 단열재를 사용해도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사고 아파트의 건물 간격이 2m도 되지 않아 불길이 쉽게 번졌지만 이 또한 법적 문제는 없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소규모 주택을 도심에 대량 공급하기 위해 각종 건축 규제를 완화한 결과 등장했다. 건물 간격이나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을 크게 낮춘 덕에 비용 절감 효과는 거뒀지만 안전 분야의 규제 완화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됐다. 여객선 제한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해 외국의 낡은 선박을 도입함으로써 대형 참사로 이어진 지난해의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선진국은 경제적 규제는 완화하되 국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와 관련된 안전 분야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안전 분야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번에야말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정부 화재 사고 뒤 당정이 대책을 내놓았다. 6층 이상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주거용 건축물에는 옥외계단(피난계단)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도시형 생활주택 간 거리를 종전보다 넓히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종전에 지은 건물로 확대 적용하는 문제에는 국민안전처가 찬성한 반면 국토교통부는 반대함으로써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국민의 안전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국민안전처가 제 구실을 하고 있는지 의아하다. 국민의 눈에 우리나라가 안전을 중시하는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사실 이번 대책 또한 도시형 생활주택에 국한돼 있어 도심의 대형 사고 예방에는 크게 미흡하다. 화재예방 대책은 도심의 모든 건축물에 적용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화재 감지기 의무 적용대상 확대 및 기존 미설치 법령에 의해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소방대상물에 소급적용이 필요하다. 현재 단독경보형감지기가 적용되지 않은 소규모 특정소방대상물이 많아 화재 사실의 전파가 늦어짐에 따라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되고 있다.

둘째, 사무실이나 침실 등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연기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화재가 발생해 1분 동안 15도 이상 상승할 때 감지하는 차동식 화재감지기를 주로 설치한다. 하지만 이런 때는 경보가 울리기 전에 이미 연기에 질식해 사망할 우려가 있다. 연기감지기를 설치하면 불이 번지기 전에 미리 사고를 감지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셋째, 스프링클러 적용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 5층 이하 건물에서 설치비용이 부담된다면 일종의 간이 스프링클러인 ‘일반소방전용수도미터기’라도 설치해야 한다. 일반 주택에서 이 장비를 설치할 때 드는 비용은 100만 원 이내다.

넷째, 법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피난 및 방화구획 관련 시설물의 설치 근거는 건축법이며 관리는 소방법을 따른다. 이 때문에 일선에서는 혼선이 적지 않다. 소방 피난 및 방화특별법을 제정해 불합리한 피난 및 방화 규정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은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정부에서 준비 중인 국민안전혁신 방안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가능해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담기기를 기대한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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