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남수]국가정보원을 대하는 지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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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전 국가정보원 제3차장
김남수 전 국가정보원 제3차장
“세상에… 비밀 공작사항을 이렇게 다뤄도 되는 거야?”

지인이 대뜸 물었다. 최근 국가정보원 증거 위조 의혹사건으로 비밀 공작망 폭로가 꽤나 우려스럽다는 목소리였다. 이번 사건으로 초래된 중국 내 휴민트(HUMINT·인적정보)망 노출과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었다.

‘허룽(和龍) 싼허(三合) 옌볜(延邊) 선양(瀋陽)이 주 활동무대’ ‘국정원의 대공수사·대북공작 라인이 함께 개입’ ‘화이트(white)는 주선양 총영사관의 영사’ ‘블랙(black) 김 과장은 신분을 숨기려 사업가로 행세’ ‘(자살을 시도했던) 협조자 김 씨는 월 300만 원 받는 비중 있는 망’….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사 제목들이다. 이 내용만으로도 누구나 다음과 같은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

‘한국의 국정원은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서 공작조직을 운영한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블랙요원은 사업가로 위장해 조선족을 협조자로 포섭한다. 조선족 협조자는 허룽 싼허 옌볜 등지의 중국 국가기관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문서를 입수한다. 입수한 자료는 주선양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국정원 화이트요원을 통해 영사 인증을 받는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국가정보망은 큰일이 났다. 우리나라 안보에 가장 민감한 지역인 북-중 접경지역의 휴민트가 붕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 당국은 사건과 관련된 중국 기관원과 조선족 협조자들을 색출해 처벌함은 물론이고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우리 정보원들의 행적까지 치밀하게 조사해 외교 문제로 삼거나 최소한 견제하려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 전역에서 한국의 정보활동 전반을 점검하려 들지 않겠는가.

1차적 책임은 물론 국정원에 있다. 이와 동시에 대공사건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마치 집단 자해행위를 하듯 사태를 악화시킨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애초 간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증거 위조 의혹이 불거졌을 때 국정원의 공작활동과는 분리해 다뤘어야 옳았다. 비밀공작에 대한 사항은 별도 조사팀을 꾸려 비공개로 심도 있게 진행한 뒤 처리방법을 결정했어야 했다.

2012년 전 세계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계약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발칵 뒤집어졌다. 미 정보당국이 무차별적으로 불법 감청을 하고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이었다.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은 동맹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까지 전면에 나서 “국가안보국의 첩보활동을 통해 테러를 막고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고 옹호했다. 아직까지 이 사건의 내막은 물론이거니와 책임자가 누구인지, 누가 처벌을 받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 역량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처리하려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세계 최강의 휴민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도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 2010년 2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핵심 간부가 두바이에서 암살됐을 때 사건의 배후로 모사드가 지목됐다. 모사드 요원들이 두바이의 폐쇄회로망에 포착됐지만 지금까지도 모사드는 물론 이스라엘 정치권과 언론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밝히지 않고 있다. 추궁과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은 조용히, 그러나 엄정하게 이루어진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정보활동 관련 사항은 최대한 비공개로 다뤄져야 한다. 둘째, 국정원은 통렬히 반성하면서 사태가 이렇게 된 원인과 문제점을 엄정히 진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셋째, 외국의 모범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국가정보활동 관련 사항에 대한 사법 당국의 수사와 국회 조사활동의 모델을 만들어 국가정보 역량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남수 전 국가정보원 제3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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