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원식]‘보편적 복지’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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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씩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수정해 선별적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거짓말 정권’이라느니, 무상복지 공약에서 후퇴했다느니 말들이 많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기초연금 외에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고교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은 대표적 보편적 복지에 속한다. 지난 주말 발표된 정부 예산안(375조 원)에 따르면 이러한 공약들 역시 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도 박 대통령이 기초노령연금 외에 4대 중증질환 환자와 고등학생들에게 제2, 제3의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정치권은 이쯤에서 기초연금안에 대한 논쟁을 끝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정권은 필히 ‘보편적 복지의 덫’에 더 크게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란 궁핍한 국민들에게 생활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 복지가 사회적 비용이 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따라서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국민들을 포함시키는 ‘보편적 복지’는 낭비일 뿐이다. 단순히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준다고 일시에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결코 대안이 아니다.

이제는 냉철하게 보편적 복지의 실현 가능성이나 필요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더구나 정부 재정은 올해도 적자재정을 꾸려야 하는 상태가 아닌가.

첫째, 아무리 예산이 충분히 배정된다고 해도 보편적 복지는 대상자가 대폭 증가하면서 복지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에서도 급식 예산이 바닥나기 시작하면 반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반찬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능력 있는 학부모에게 기대는 결과를 낳게 된다.

둘째, 보편적 복지라지만 결국 모든 계층이 아닌 어려운 계층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항상 더 많은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불필요하다고 하면서 대신 다른 더 좋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들을 위하여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다.

셋째, 일반적으로 보편적 복지는 전국적으로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무상보육의 시작은 전국에 보육시설 대란을 낳았다. 그뿐 아니라 실질적인 보육비를 인상시킴으로써 유아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이제는 정부나 시민단체가 원하는 복지가 아니라 서민들이 개별적으로 원하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학부모들은 무상교육이 아니라 어느 정도 비용이 들더라도 아이들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치 교육을 원한다. 환자들은 무조건 진료를 공짜로 받기보다 적당한 비용을 내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더 쉽게 받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복지 재정을 충당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중앙정부의 재원 조달 능력만 보아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 부채, 공공부문 부채 등까지 포함한 국가 부채가 이미 1000조 원에 이르고 앞으로 부채의 이자에 이자까지 더해 가면서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정부나 공공부문은 중앙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므로 전혀 통제되지 않는 이들의 부채도 결과적으로 중앙정부의 몫이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아무리 재정을 잘 관리한다고 해도 타 부문에서 적자가 커지면 복지재정의 조달에 부담이 생긴다.

지금은 선별적 복지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닦아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예산도 없이 보편적 복지만 추구하면서 증세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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