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초유의 前 대법관 영장 청구… 사법 불신 스스로 도려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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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어제 청구했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이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하급자들과 진술이 상당히 달라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사법사상 처음으로 법원 내부의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다. 헌정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법원행정처장 때 박 전 대법관은 강제징용 민사소송에 개입하는 등 30여 개 의혹에, 고 전 대법관은 판사가 연루된 건설업자의 뇌물 재판 개입 등 20여 개 의혹에 각각 연루됐다고 한다. 2014년 2월부터 작년 5월까지 번갈아 처장을 지낸 두 사람이 사법행정 등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줄 목적의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들을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탈행위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법원은 이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누구에게 맡길지부터 고심할 것이다.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다면 ‘제 식구 감싸기’ 비판에 직면할 소지가 크다. 그럴 경우 위헌 논란 등으로 잠복한 특별재판부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다시 커질 수 있다.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이미 홍역을 치른 만큼 영장심사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법원 스스로 엄정할 필요가 있다.

어제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법원 토론회’에서 법원행정처를 대체하게 될 사법행정회의의 권한과 역할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고 한다. 법관징계위원회는 의혹에 연루된 판사 13명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놓고 심의를 이어갔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연루 법관 탄핵 촉구에 반대하는 울산지법 부장판사가 최근 ‘법관회의를 탄핵하라’고 촉구한 데 이어 의결 당시 판사 한 명의 의결권이 투표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까지 나왔다.

법관들의 끝장 토론에 이어 전국 법관들을 상대로 사법개혁 방향에 관한 설문조사도 이어지고 전국 법원장 회의도 7일 열린다. 최근 사태는 초유의 힘든 시기를 맞은 사법부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법 불신이 부른 끊이지 않는 법원 내부의 진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신뢰는 가벼운 실수로도 무너질 수 있지만 신뢰 회복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전 대법원장의 직할 조직인 법원행정처 엘리트 공무원들이 쌓은 사법 불신은 그 뿌리가 깊다. 불신의 뿌리는 도려내야 하겠지만 재판 불신으로까지 확산되는 사법 위기를 방치할 수는 없다. 사법부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면 외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법원은 자성하는 자세로 사법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대법관#사법부#사법행정제도 개선#사법행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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