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韓國에서 규제혁신 왜 안 되는지 보여주는 개인정보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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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개인정보 데이터 규제혁신도 난관에 부닥쳤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청와대와 협의해 대통령 직속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에 각 부처의 규제 권한을 이관하고 개보위를 독립기관으로 확대해 개인정보를 일괄 관리하려 했다. 개보위의 권한 강화와 확대, 독립화는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라는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등 개인정보 주무 부처들이 반대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번 일만 보더라도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 규제혁신이 안 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대통령이 아무리 얘기해도 시민단체에 휘둘리는 정치권, 규제를 철밥통처럼 끌어안은 관료 등이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규제혁신이라는 총론은 찬성해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정치권과 관료들이 온갖 조건을 달아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개인정보를 가공한 빅데이터는 금융과 의료, 공공 분야는 물론 업종 간 데이터 융합으로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그만큼 보호 역시 중요하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도 규제혁신안을 발표하면서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가명정보 생성은 엄격한 보안시설을 갖춘 국가 지정 전문기관에서만 맡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7년 조사에서 빅데이터 활용과 분석 수준이 63개국 중 56위에 그칠 정도로 빅데이터 후진국이다. ‘4차 산업혁명의 원유’라는 데이터의 활용을 위해 개인정보 보호 규제는 기술적으로 풀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도 여당이 규제 조직인 개보위의 확대부터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만을 다루는 개보위는 설립 목적이 데이터 규제혁신의 목적과 상치되는 조직이다. 여당은 시민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결국 데이터 규제혁신안에 대해 “자본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에 도리어 굴복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데이터 규제혁신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국회의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이제 남은 것은 여당이 책임감을 갖고 반대하는 정치적 지지 세력을 설득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관료들이 더 이상 규제를 끌어안지 못하도록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8월 국회 통과가 좌절된 은산(銀産)분리나 규제 프리존 법안에 이어 데이터 규제혁신안마저 지지부진한 논의와 공방만 이어진다면 이 나라에서 규제개혁의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규제혁신#대인정보 데이터 규제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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