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집권후 자유세계 처음 나온 김정은, 주사위는 던져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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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어제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례로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김정은은 첫 일정으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만나 “역사적 회담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로 출발하며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단 한 번의 기회(one-time shot)”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싱가포르 방문은 사회주의 이웃나라 중국과 남북 중립지대 판문점을 넘어선 ‘다른 세계’로의 첫 외출이다. 냉전시대 사회주의 진영 안에서 비동맹 외교를 했던 할아버지 김일성도, 오직 중국 러시아에만 의존하던 아버지 김정일이 시도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외교의 시작이다. 싱가포르는 정치세습이 이뤄진 권위주의 체제지만 고도의 경제성장을 일궈낸 자본주의 개방국가라는 점에서 북한판 개혁·개방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나라다.

김정은은 이번에 자신의 노후한 전용기 대신 중국 최고위층 전용기를 빌려 이용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선보였다. 신변 안전을 위해 비행 중 편명과 목적지를 바꾸는가 하면 자신의 전용기까지 3대를 함께 띄우는 작전도 폈지만 이런 행보는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번 외출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불량국가를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변신시키는 거대한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 새로운 길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해야 열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의 성과는 적어도 우리가 서로 만난다는 것”이라고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면서 기대 수준을 낮췄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 특사 파견을 통한 고위급 대화는 물론이고 밀도 있는 실무 의제협상이 진행된 만큼 역사적인 빅딜을 이루기에 충분한 사전 협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회담의 성패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합의문에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시설, 능력까지 핵을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의지가 합의문에 명시돼야 한다. 또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통한 전면 사찰은 물론 언제 어디든 불시 사찰을 허용해 검증받아야 하고, 핵개발 인력의 민간분야 재취업까지 이뤄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완수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비핵화는 빠른 속도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비핵화 이행 초기에 핵무기 해외 반출 같은 과감한 핵 포기 조치를 이뤄야 그 진정성을 인정받고 6·25 종전선언을 출발점으로 북-미 수교,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지는 안전보장도 앞당길 수 있다. 김정은은 첫발을 내디딘 이상 빠른 비핵화로 빠른 보장, 나아가 빠른 번영의 길로 달려가길 바란다.
#북미 정상회담#김정은#트럼프#리셴룽#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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