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靑 청원 게시판 ‘참여’보다 ‘떼법’의 場 된 건 아닌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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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19일로 운영 3개월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0일 ‘대국민보고’에서 “국민들은 간접 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도 직접 제안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청원 게시판이 신설됐다. 게시판에 쏟아진 청원에는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 문구 의무화’ 등 정책화를 시도할 수 있는 청원도 있지만 사법부나 입법부 영역에 해당하는 청원 등 청와대가 들어줄 수 없는 청원이 훨씬 많았다.

현재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청원 동의가 나온 것은 ‘조두순 출소 반대’다. 그 뜻에 공감은 하지만 법을 고치지 않으면 들어줄 수 없는 청원이다. 청와대를 향해 청원한다고 청와대가 다 들어줄 수도 없는 삼권분립의 시대다. 입법부에 관한 사안이면 입법부에, 사법부에 관한 사안이면 사법부에 직접 청원하는 것이 옳다. 사법부나 입법부의 영역에 해당하는 사안까지 다 청와대에 하도록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절대군주처럼 여기는 시대착오적 사고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건설적인 제안도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7월 시험비행 도중 추락한 무인기 개발에 참여한 국방과학연구소(ADD) 비행제어팀 연구원 5명에게 무인기 가격 67억 원을 배상하라고 통보했다. 연구원들의 과실이 있다고 해도 무인기를 팔아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도 아닌데, 1인당 13억 원씩 물어내라고 한 것은 가혹하니 결정을 재고하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려는 청와대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제사 폐지’ ‘여성이 결혼 후 불려야 하는 호칭 개선’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맡게 해달라’는 막무가내식 청원도 적지 않다. 정식 절차를 밟은 청원에는 본래 국가가 심사하고 결과를 통지할 의무가 따른다. 그래서 청원하는 측도 신중을 기하도록 헌법은 청원을 문서로 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청원이 청원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원법에서는 ‘감사 수사 재판 등이 진행 중인 사안’ ‘허위 사실로 중상 모략하는 사안’이나 모해(謀害) 목적의 청원을 청원권의 남용으로 금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 금지’ ‘자유한국당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 요청’은 금지돼야 할 청원이지만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청원자 수 상위 2위, 12위를 기록했다. 직접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청원 게시판이 지지자 결집의 장(場)으로 이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청와대#청와대 청원 게시판#조두순 출소 반대#청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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