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 ‘직접민주주의’ 강조, 代議制 헌법정신 어긋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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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개최한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회에서 “국민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평소 정치를 구경만 하고 있다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이런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며 “그렇게 (간접민주주의를) 한 결과 우리 정치가 낙오되고 낙후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처럼 정치가 잘못할 때 직접 촛불을 들거나 댓글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고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것을 직접민주주의 사례로 꼽았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국민주권을 천명했지만 주권행사 방식은 국회·대통령을 통한 대의민주주의, 즉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했다. 물론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도 있다. 헌법 개정안이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언급한 촛불집회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지 직접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는 대통령을 국민투표로 해임시키는 국민소환제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국민소환제가 있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투표를 했다면 직접적인 국민 의사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방식은 큰 혼란과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우리 헌법은 대신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통한 탄핵 절차를 밟도록 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간접민주주의 방식에 따른 ‘질서 있는 탄핵’이었다.

댓글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정부 홈페이지에 정책을 제안하는 것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행사이지, 직접민주주의는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유행한 참여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의사를 도출하는 과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 의사를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와 다르다.

대통령이 언급한 직접민주주의는 본래의 개념에도 맞지 않고 우리 헌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우리 정치가 낙후한 것은 간접민주주의인 대의제 때문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살리지 못한 국회의원과 제왕적 대통령 탓이 크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대의기관인 국회를 경시하는 것으로 비쳐선 곤란하다.

대통령 발언은 아마도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직접민주주의적 정치는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안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의 선동적 주장이 대중의 여론을 지배하면 ‘온라인 파시즘’을 낳을 수도 있다.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국회 우회’가 돼선 안 된다.
#문재인#직접민주주의#온라인 파시즘#국회 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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