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적폐청산 리스트’… 조사 자체가 정치 개입 아닌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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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적폐청산 조사활동이 정치권에 거센 논란을 낳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어제 국정원이 선정한 적폐청산태스크포스(TF)의 조사 대상 13건을 두고 과거 보수정권을 겨냥한 ‘정치보복 리스트’라고 비난했다. 국정원은 적폐청산을 통한 근본적 개혁을 내세우지만 조사 대상 13건이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이어서 국내 정치와의 단절을 선언하고도 다시 정치 개입 논란에 휘말리는 자충수를 둔 꼴이다.

국정원이 11일 공개한 리스트는 대선 댓글 사건,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채동욱 검찰총장 뒷조사, 노무현 논두렁 시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국정원 개입 논란 또는 의혹이 불거진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 가운데 아직도 제대로 규명이 되지 않아 뒷맛이 씁쓸한 것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보수정권 시절 일어난 일이고, 상당수가 이미 법원 판결이 났거나 재판 계류 중 또는 검찰 수사 중이다. 야당이 “국정원이 ‘국가정치원’이 되려는 것이냐”고 비난하는 것도 당연하다.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팔이 잘려 나갈 수도 있다”며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다.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을 막기 위해 국내정보담당관(IO) 제도를 폐지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또 민간 전문가가 다수인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를 구성하고 그 산하에 적폐청산TF와 조직쇄신TF를 가동할 계획이다. 적폐청산TF 활동도 외부 인사와 수사 전문가를 데려와 과거 국정원 개입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외부 인사가 참여한다지만 조사 주체가 국정원인 것만은 틀림없다. 국정원이 국정원의 과거를 조사한다는 점에서 조사 주체의 적절성과 공정성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조사 대상도 이전 보수정권에 한정되다 보니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 게이트나 좌파단체 지원 의혹 같은 사건들은 왜 빠졌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사를 벌이다 보면 국정원 조직이나 인력에 대한 문책에서 끝나지 않고 검찰에 이첩되는 사건도 나올 수 있다. 지난 정권의 핵심 관계자가 연루된 정황이 나오면 국정원 개혁은 정치적 사안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민간인 사찰이나 정치 개입, 간첩 조작, 종북몰이 같은 과거 권력기관의 음습한 정치공작을 청산하고 해외·북한·방첩 정보역량 강화라는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한 개혁 추진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결과가 과거 정부 뒤지기나 흠집 내기로 나타난다면 정권교체 때마다 홍역을 앓았던 상처투성이의 국정원 역사가 되풀이되고 말 것이다. 적폐청산TF는 아직 가동하기 전이다. 지금이라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적폐청산 리스트#정치보복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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