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위기에 소환 한번 없이 묶어둔 ‘기업인 출국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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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특별검사팀이 해체됐음에도 작년 12월 10일 출범 때 걸어놓은 기업인 출국금지 조치가 3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다. 출금 기업인 중에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8명, 최태원 회장 등 SK 3명, 신동빈 회장 등 롯데 2명이 포함돼 있다. 특검팀은 지난달 28일 마지막 브리핑에서 기업인 출금 해제에 대해 “검찰과 협의해 적절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다시 한 달을 더 연장했다.

수사에 필요하면 출금 조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성 이 부회장만 조사받고 구속됐을 뿐 SK 최 회장과 롯데 신 회장은 소환도 한 번 되지 않았다. SK 최 회장은 반도체 업계 최고의 빅딜로 꼽히는 일본 도시바 인수전을 코앞에 두고 발만 구르는 상황이다. 도시바가 이달 초 반도체 지분 전량 매각 방침을 발표한 직후 최 회장은 도시바 최고위층을 직접 만나기 위해 일본 출장 계획까지 잡았다가 출금 조치 때문에 포기했다. 현재 삼성과 SK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 2위인데 4위인 도시바가 미국이나 중국 기업에 넘어간다면 세계 반도체의 순위가 뒤바뀔 판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제공으로 중국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는 롯데의 신 회장은 중국 고위층과 상당한 인맥을 갖고 있음에도 현지에 가서 사태를 수습해 볼 길이 막힌 상태다.

정부가 도주 우려도 없는 기업 총수에 대한 출금을 너무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최 회장은 특검이 출금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이달 10일 출금이 해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법무부는 특검의 출금 연장 신청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였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사법집행기관이 글로벌 경제 현장의 사정에 이렇게 둔감하다면 심각한 문제다. 외국에서는 기업인에 대한 출금 자체가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출금을 당한 한국 기업인을 심각한 범죄자로 인식할 우려가 없지 않다.

이제 공은 다시 검찰이 넘겨받았다. 검찰이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 쉽게 출금을 풀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출금에 대한 이의신청이 법으로 보장돼 있지만 기업인들은 검찰에 밉보일까 봐 하지도 못한다. 내수 침체에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확산,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예고 등으로 기업의 경영 여건은 최악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기업인 출금은 가라앉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풀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경제위기#기업인 출국금지#최태원#신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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