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개혁 위한 상법개정案도 玉石 가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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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이 기업 대주주의 권한을 축소하는 상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감사위원을 일반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방안, 이사 선출 시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방안,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방안, 주주총회 시 전자투표 의무화 방안 등이 골자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경영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이라며 반발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어제 “도둑 잡으려고 야간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격”이라며 반대하는 보고서를 국회에 전달했을 정도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경유착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막대한 공적 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 역시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투명경영을 위한 상법 개정이 중요하다는 소리도 높아졌다. 기업이 단기실적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이익을 재투자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이후의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한 상황에서 일부 재벌의 ‘황제 경영’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경제민주화, 대기업 개혁을 통한 재벌의 영향력 감소가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부정적일 수 있어도 결국 창업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소액주주를 위한 정의만 강조하다 보면 상법 개정안 속의 독소 조항을 걸러내기 어렵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조항은 이사 선출 시 집중투표를 의무화하는 조항과 결합돼 펀드 등 기관투자가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키우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외국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재계의 주장이 기우(杞憂)만은 아니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하나의 의결권만 배정한다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경제민주화가 중요해도 지배주주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없다.

야권이 수적 우세를 업고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일반법인 상법 개정을 급하게 밀어붙인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국회는 상법 개정안의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되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프리존 특별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통과에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성장과 분배라는 두 바퀴 중 한쪽만 앞서간다면 한국경제라는 수레가 쓰러질 수도 있다.
#재벌개혁#최순실#더민주#국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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