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트럼프發 환율전쟁 시작됐는데 정부는 ‘살펴보기’만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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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 시간) “달러화 강세가 과도하다”고 한마디하자 외환시장에서 원화 위안화 엔화 등 각국 통화 가치가 급등했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전일(1174.5원)보다 7.8원 내린 1166.7원으로 마감했다. “달러 강세로 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을 못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신(新)환율전쟁’의 선전 포고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압박이 우리에게 특히 위협적인 것은 일자리와 수출이라는 한국 경제의 약점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 LG전자 등이 트럼프 눈치를 보며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원화 가치 상승으로 수출이 더 큰 부진에 빠진다면 국내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여지는 거의 없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에서 완전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공식화함에 따라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정부는 상반기에 공공 부문에서 3만 명을 뽑아 일자리의 숨통을 틔우겠다지만 민간기업이 한국을 떠나는 상황에서 세금으로 고용을 늘리는 일이 지속 가능한지 의문이다.

 일본도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통상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경제 외교’에 있어선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트럼프가 일본 도요타 자동차를 겨냥해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다니 안 된다”고 트위터를 날리자 도요타는 “이미 미국에 13만6000명이 일하고 있다”고 ‘사실’을 알려 트럼프의 트위터를 잠재우는 식이다. 일본 정부는 도요타를 “미국의 좋은 기업시민”이라고 옹호하며 기업과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움직이고 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중일 관계가 악화되자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도 등지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해 중국 의존에서 이미 벗어났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어제 트럼프의 강(强)달러 발언에 대해 “좀 더 살펴봐야겠다”고 한 것은 전략이 없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기업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다변화 전략은 정권 초기부터 추진했어야 할 일이다. 트럼프 당선인 취임 직후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를 공식 거론할 경우 유 부총리는 그때도 살펴보겠다는 말로 시간을 끌 건가.
#도널드 트럼프#환율 전쟁#유일호#한미 자유무역협정#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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