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논란 많은 이재용 구속영장, 법원에 떠넘긴 특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7일 00시 00분


코멘트

 최순실 국정 농단을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어제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걸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최 씨 측에 430억 원대 금전을 지원한 혐의다.

 이번 사건은 뇌물이 앞서고 대가가 뒤따르는 일반적인 뇌물 사건과 차이가 있다. 특검이 ‘대가’라고 주장하는 삼성의 계열사 합병이 먼저 이뤄지고, 그 후 삼성의 최 씨 모녀에 대한 승마 관련 지원이 이뤄졌다. 사후수뢰죄로 볼 수도 있지만 대가와 뇌물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법적 다툼의 소지가 커서 구속 수사가 적절한지 의문이다. 논란이 큰 혐의라면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이 가져올 파장도 고려해 기소하더라도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뇌물 액수에는 미르와 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도 포함돼 있다. 두 재단에는 삼성만이 아니라 53개 기업이 돈을 냈다. 기업은 대가를 바라고 돈을 낸 것이 아니라 권력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무시하기 어려워 검찰도 뇌물죄를 적용하지 못하고 강요죄에 머물렀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검찰은 강요로 보고, 특검은 뇌물로 봤다는 사실 자체가 특검의 법 적용이 자의적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뇌물죄는 혐의를 적용하기 전에 뇌물을 받은 사람을 조사하는 것이 순서다. 최 씨는 특검의 소환에 불응해서 조사하지 못했다고 해도 박 대통령에게는 조사계획도 통보하지 않았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일단 뇌물로 걸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 법원에 책임을 떠넘기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그때야 박 대통령을 수사하겠다는 생각이라면 법원의 등 뒤에 숨는 당당하지 못한 태도다.  

 이규철 특검보는 어제 구속영장 청구 배경을 설명하면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돈을 낸 것도 억울한데 그 때문에 뇌물로 처벌까지 받게 생겼다. 이것은 정의에 대한 통념과 맞지 않는다. 특검은 검찰과 달리 시한부다. 수사하다 눈에 띄는 온갖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겠다고 판을 벌이는 게 특검의 역할이 아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 부분을 정밀하게 도려내는 것만으로도 특검에 부여된 시간은 촉박하다.
#최순실 국정 농단#삼성#이재용#뇌물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