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싸게 산 외제차도, 부당 투자이득도 판사에겐 뇌물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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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고가의 외제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시세보다 싼 가격에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장판사의 딸은 화장품 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이 후원하는 미인대회에서 입상했다. 정 전 대표가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기 전 일이다. 하지만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정 전 대표는 이 부장판사에게 항소심 재판부 로비를 부탁한 바 있다. 공사(公私)가 엄정해야 할 법관으로서 참으로 부적절한 처신이다.

정운호 게이트 수사에서 정 전 대표가 검찰과 법원 인맥을 통해 로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김모 수사관은 정 전 대표 측 브로커에게서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서울고검 박모 검사는 직접 1억 원을 받은 혐의가 있지만 뇌출혈로 입원해 소환이 연기됐다. L 부장판사는 당초 정 전 대표 항소심 사건을 배당받은 줄 모르고 그의 브로커와 저녁식사를 한 뒤 재배당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사표를 냈다. 법원 검찰의 낯뜨거운 치부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2008년 한 사채업자에게 주식 투자금 명목으로 9000여만 원을 건넨 뒤 2억 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올 2월 사직했다. 이 부장판사는 고교 선배인 사채업자로부터 투자를 권유받고 한 시계 제조업체의 실권주를 4만 주 인수해 2배 넘는 수익을 올렸다. 대법원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맡긴 판사에 대해서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면서도 “법 위반 사안은 없다”며 징계 없이 옷을 벗겼다. 정 전 대표의 외제 중고차를 헐값에 인수한 부장판사는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볼 일이다.

수원지방법원 최민호 판사가 명동 사채왕에게서 수억 원을 받아 현직에서 구속된 충격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 지난해다. 이후 대법원은 법관 비위를 감사할 외부위원 중심의 감사위원회까지 만들었으나 달라진 게 무언지 모르겠다. 법관들이 청렴의무를 소홀히 하고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이익이나 챙기면 사법부의 신뢰, 재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운호 게이트 수사#부장판사#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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