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 출마 시사’ 반기문·정의화의 당당하지 못한 처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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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첫날인 25일 대선 출마를 시사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는 과잉 해석된 것 같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제 반 총장은 국내 정치를 질타하며 “누군가가 대통합 선언을 하고 나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어제 전직 외국 정상들이 반 총장에게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냐고 물은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도 반 총장이 “(관훈클럽에서) 그렇게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은 당당하지 못했다.

한국이 배출한 첫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점에서 반 총장은 우리의 자랑이고,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상징한다. 유엔 총장의 임기는 아직 7개월이나 남아 있다.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누가 뭐라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종전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책을 맡은 사람다운 처신일 것이다. 반 총장이 “분단도 큰 문제인데 내부 분열된 모습이 해외에 보도되면 창피할 때가 많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반 총장에 대해 “국제 현안에 대한 중재 능력도, 유엔 내부 쇄신에 대한 역량도 떨어진다”며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반 총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밝힘으로써 이제는 모든 언행이 ‘대권 행보’라는 틀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 됐다. 방북을 재추진하겠다며 남북문제 해결에 남다른 적극성을 보인 것도 대권 도전을 위한 실적 쌓기라는 소리를 들을 공산이 크다. 29일 안동과 경주를 방문하는 것도 TK(대구경북) 보수 본류를 잡기 위한 정치적 행보로 보인다. 이럴 줄 알면서도 반 총장이 무주공산인 여권에 ‘대선 상수’로 자신을 각인시킨 뒤, 다음 날 언론 탓을 할 계산으로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면, 기존 정치권을 능가하는 정치 공학이다.

퇴임을 앞둔 정의화 국회의장도 어제 자신의 싱크탱크 ‘새 한국의 비전’을 출범시키며 대권 도전 의욕을 드러냈다. 정 의장은 “중용의 길을 실천해야 정치가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전후 사정을 따져 보면 개운치 못하다. 그는 2월 정대철 국민의당 상임고문을 만나 “대선에 나가 보려고 한다”며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이 노동개혁법안 등 중요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청할 때 ‘진정한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며 거부했던 정 의장이 알고 보니 대선 출마를 계산하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반 총장 말대로 국민은 ‘대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반 총장이 당장 유엔 총장직을 버리고 나올 수 없다면 임기 끝까지 유엔 일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의장직을 버리지 않고 대선을 준비했던 정 의장도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반기문#대선 출마 시사#정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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