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옥석 구분 없이 부실 조선3사에 세금 퍼줄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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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조선 3사의 자구책(自救策)을 보고 구조조정이냐, 법정관리냐를 결정하겠다던 채권단이 이번 주 본격 심사에 들어간다. 부채비율이 7308%나 되는 대우조선해양은 자구책을 안 내고 있다가 금주 내 인력 감축, 임금 삭감, 자산 매각을 담은 자구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인원 감축을 뼈대로 한 자구안을, 삼성중공업은 재무구조개선계획을 제출했다. 현대중과 삼성중은 부채비율이 200∼300% 정도지만 성장의 한계에 이른 조선업 특성상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조선 3사 노조들은 “자구책은 근로자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총력 투쟁에 나설 태세다.

채권단의 뒷전에 있는 정부는 말로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국가 산업 개편에 대한 큰 그림과 실행 계획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정확한 기업 진단을 통해 살릴 기업과 포기할 기업을 가리겠다는 것도 아니다. 옥석 구분 없이 일단 다 살려 놓자는 식이어서 부실기업도 자구책이 통과되면 회생 자금, 즉 국민 세금을 받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인력과 임금을 줄이는 자구책 정도로는 구조적 문제로 생긴 부실을 털어내기 어렵다는 게 지금까지의 교훈이다. 대우조선은 1989년 이후 부실이 생길 때마다 출자 전환, 신규 대출 방식으로 수조 원을 받았지만 지난해 또 5조5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국책은행은 이미 조선·해운업에 21조 원이 물려 있는 상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기약 없는 ‘밑 빠진 독에 혈세 붓기’에 온 국민이 ‘인질’로 묶이는 느낌이다.

어제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 총출동했다. 김 대표는 “경영이 잘못되면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부실 경영을 숨기기까지 한 대우조선 전임 사장들과 자회사를 감독하지 못한 대주주 KDB산업은행의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하지만 노조가 야당 대표의 메시지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고통 분담을 거부한다면 구조조정에 바치는 국민 세금은 또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다.

정부는 한 달 전 78조 원의 빚을 짊어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방침을 발표하면서 숨넘어갈 듯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러고도 ‘한국형 양적완화’를 둘러싼 재원 논란으로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지금 또 자구책과 관련해 노조를 동참시키는 데 시간을 보낸다면 해외투자자들도 한국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의심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 원을 지원하면서 ‘자구책에 노조 동의를 받지 못하면 자금 지원 불가’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모든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엄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종업원들의 의지가 없는 조선 3사에 국민 혈세를 퍼줄 순 없다.
#부실 조선 3사#조선·해운업 구조조정#국민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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